living note

상사화의 계절

반야화 2024. 9. 20. 18:00

2024년의 여름은 기록할만하다.
한 달간의 장마, 한 달 반의 혹서, 이 엄청난 날들을 이겨내고도 제철을 잊지 않고 곱게 피어난 꽃무릇과 상사화는 꼭 봐야 한다. 그동안 붉은 물감의 바탕을 이루는 거대한 군락지인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울산 대왕암공원에서 무척 잘 봤는데 남쪽지방이 생육조건이 좋은건지 아래지방에서 많이 본 셈이다. 그 붉은 꽃무리 속으로 들어가면 내 얼굴도 붉게 물들어 가는듯했다. 그렇다고 해마다 그곳을 찾지는 않는다. 가장 싱싱하고 화려할 때 봤던 고운 모습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다. 같은 장소라고 언제나 같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아름다운 기억에 흠집을 내고 싶지가 않다. 그 기억을 고이 간직하고 보고 싶을 때 나의 기록을  찾아보면 된다.

올해는 하얀 꽃무릇이 있다고 해서 찾아간 곳에는 흰색뿐 아니라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을 한꺼번에 봐서 너무 좋았다. 주류를 이루고 있는 붉은색에 비해 흰색은 단 한 그루였으며 다른 것도 몇 그루 되지 않아서 조금 늦게 갔으면 못 볼 뻔했다.좋아하는 걸 적기에 본다는 것도 행운인 것 같다.

비련의 꽃인 상사화와 꽃무릇 (석산)은 봄에 잎이 피고 가을에 꽃이 피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한다. 계절 간의 시간차가 크기 때문에 꽃은 시든 잎조차 보지 못한 채 한 해를 마감한다. 같은 뿌리에서 올라온 두 그리움이 울대 같은 긴 꽃대를 고추세우고 행여 만나려나 기다림의 나날을 보내지만 애달픈 운명은 그리움의 절정에서 피를 토하듯이 애잔한 꽃으로 승화한다.

그리움에 지친 긴 꽃대는  바로 서기도 힘겨운지 쓰러진 게 많다. 똑바로 서 있는 꽃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살피고 또 살펴서 무리가 아닌 낱개의 꽃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불갑사나 선운사의 꽃무릇은 빽빽하게 무리 지어 있으니 서로 기대며 그리움을 나누는 친구가 되어 함께 붉어가며  곧게 서 있는 꽃밭을 이루고 있는데 그건 그것대로 특별한 초가을을 붉은 단심으로 물들이고 있으니 누구나 꼭 보지  않으면 아마 기다림,  그리움, 이런 걸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된다.  

꽃과 잎이 만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어 붙여봤다.

네 가지의 색상의 꽃무릇

이것이 상사화지만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의미로 일반적
으로 꽃무릇도 상사화라고 한다.

마스카라로 말아 올린 미인의 속눈썹 같아 매력이 넘치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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