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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서 피는 꽃

여름에는 밤이 참 좋죠. 낮에는 차만 보이던 동네가 밤이 되니 온 가족이 강아지까지 다 밖으로 나옵니다. 공기는 또 얼마나 좋은지 풀벌레와 개구리 맹꽁이까지 합창으로 한여름밤의 꿈같은 향연을 매일 밤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달까지 밝아서 조명까지 비추이는 무대는 더욱 빛나는 밤입니다. 합창이 잦아들고 강가로 갔더니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이름 모를 꽃이 떨어져 잔디 위에서 다시 피는 것 같이 아름답게 보였어요. 어쩌면 떨어진 모습이 이렇게 이쁠까요? 밤은 깊어 가는데 이쁜 꽃과 밝은 달을 두고 들어 올 수가 없어 서성이다 떨어진 꽃을 주워서 작은 수반 꽃잎을 띄워두고 보려고 안고 왔습니다. 며칠은 더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식탁에는 산에서 찍은 사진을 유리 밑에 깔았더니좀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저의 작..

living note 2009.07.08

엄마는 휴가 중

30년 만에 찾아온 휴가를 즐기려 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보낼 방법도 없지만, 이것이 때로는 빨간 띠를 두르지 않는 파업 같기도 하고 자유가 지나쳐 방종 같기도 해서 어떤 때는 끼니때가 되어 솥뚜껑을 열면 밥이 없거나 국솥에 국이 없을 때도 있다. 아니면 휴업상태 같기도 해서 아침이 되어도 부엌으로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 그냥 음악만 듣고 있기도 하고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방 안에서 잔잔한 선률이 마음을 실어 일몰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먹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일상이 요즘은 먹는 건 별게 아닌냥 내 맘대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날짜도 요일도 알 필요가 없다 딱히 일정에 따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딸들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출가, 가출? 을 해 버리고 나니 마치 30년 만에 얻은..

living note 2009.06.25

오월 따라 님은 가고

2009.5.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노 대통령님의 장례식이 있었다(5.29). 장례식 애도기간에 산행을 할 수가 없어 산행을 미루다가 오늘 딸과 함께 북한산에 갔다. 마음속에는 세상의 모든 꽃들이 져버린 듯한 마음인데 산 입구에 들어서니 너무도 고운 해당화가 산 입구에 홀로 피어 있다. 이웃한 찔레꽃과 해당화가 다투어 가며 상큼한 향을 뿌리고 있는데 해당화 홑꽃잎이 노란 꽃술까지 드래내며 감추고 있는 속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다 보여주면서 순수하고 상큼한 향이 아픈 마음에 깊게 베어 온다. 한 주간 소중한 님을 보내 드리고 아직도 눈이 부어 있는데 하필이면 해당화는 왜 그리 곱고 향기롭던지, 산자들은 오월을 부여잡고 가지 말라고 푸르름에 젖어 있는데 이 아름다운 계절에 그분께서는 오월을 거두어 슬..

등산 2009.05.30

산사의 야경 (초파일)

작년에는 도심에서도 가장 혼잡하고 화려한 봉은사에서 야경을 찍어 봤지만 이번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큰딸이 절에 가보자고 해서 당일보다는 전야가 좋겠다 싶어 집 근처 북한산 삼천사로 향했다.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지니는 게 버릇이 돼서 챙겨 들고 갔는데 잊고 갔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가로등조차 없는 적막한 산길을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 삼천사에 도착하니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고 그 가운데 경내를 밝히고 있는 연등이 전에 볼 수 없었던 스펙터클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뒷 배경은 우뚝한 산봉우리가 솟아있고 키 큰 소나무와 산줄기의 곡선이 멋진 실루엣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계곡에 물소리와 소쩍새 소리 눌은밥 영화 속의 밤 같았다. 도심의 화려하던 등불과는 달리 내면의 ..

등산 2009.05.02

시원섭섭함이란?

삶이 완성되기까지에는 몇 번의 이별이 찾아 오지만 강 물 위에 꽃잎을 띄워 보내 듯 간절한 염원을 담아 고이 보내야 하는 이별도 있었네. 새끼를 가진 삶이란 천일염보다 짜다,라고 했던 어느 작가의 말이 깊은 의미로 느껴지는 밤. 그렇게 염전 같았던 가슴으로 키워낸 딸을 떠나보낸 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더니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싶었다. 자식 하나를 올바르게 키워내는데 들어가야 하는 공은 어쩌면 짜디짠 염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역할의 일부가 끝났다는 안도감이 주는 일은 염전에 작은 물길 하나를 두어 민물이 들어오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몇 번의 이별이 또 얼마나 가슴을 적실지 모르지만 내가 잘 살아주는 것, 그것은 나를 위함이라기보다는 떠나간 내 일부를 위함일지도 모른..

living note 2009.04.08

행복은 많은 댓가를 필요치 않더라

행복은 순간의 연속이지 영원한 게 아니다. 오늘 하루 행복해 지기 위한 일정은 간단했다. 빈 몸으로 나서서 배낭 가득 행복을 담아 오는 데는 그리 많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산이 품고 있던 뭇 생명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을 본다는 게 재미있었고, 혈액 같은 계곡물은 산의 혈관을 돌고 돌아 꽃과 잎을 피워내고 있었으며 가늘게 드리워진 실가지에 돋아나는 어린잎에"참 예쁘구나" 한마디 해 주면 한 아름 행복을 주고, 진달래 한 송이를 카메라에 담고 나면 연분홍 행복이 담겨 온다. 그동안 오르기 힘들어 지나치기만 했던 삼각산의 한 봉우리인 노적봉에 오르기로 결정하고 한 발씩 올라가는 그 과정에 흔한 것 같지만 처음 보는 토토리의 껍질을 깨고 뿌리를 내리는 이쁜 모습도 보고, 야생화며 진달래 ..

등산 2009.04.02

딸과 함께 즐거운 한 때

어제는 산 밑에 살면서 누리는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을 수 있는지를 실감하는 날이었다. 이제 막 진달래가 피고 있을 것 같은 따스한 날씨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연일 새벽에 퇴근하는 작은애를 데리고 오전엔 푹 재운 뒤 며칠 전에 해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언제나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는 아이가 난 너무 좋다.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두 달 동안 평균적으로 새벽 3시는 되어야 퇴근한다. 그것도 매일 25,000이나 하는 택시를 타고서 한 달 택시비만 60만 원 정도를 회사에서 지급받으며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딸, 너무 안쓰러워인 인삼을 달려 먹이다가 부족할 것 같아 홍삼으로 계속 먹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체력을 닮았는지 잘 견뎌주고 그런 중에서도 엄마와의 약속을 이행해 주는 그 애가 난 참..

등산 2009.03.23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되자

나의 존재감 나에게 있어서 존재감이 없는 것을 말하라면 유행가 가사 2절 같은 것이다 1절보다 더 멋진 가사라 하더라도 난 한 번도 2절을 알려고 애써본 적이 없으니까 집안에서 존재감 1위일 때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차츰 밀려나 유행가 가사 2절이 되었다. 정해진 나의 한계에 다다르는 동안에 나의 존재감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기억되는 부분보다 잊히는 상실감이 더 클 것 이기에 애써 나를 부각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내가 가꾸어오던 꽃밭에서 한 포기씩 분양된 꽃(딸들)들은 더 이상 그 꽃밭을 돌아보지 않는다. 나의 영역엔 잡초가 무성하고 박차고 나간 꽃들은 나 없이도 잘 살고 있으며 더 이상 잔소리가 먹혀들지 않는, 더 나아가 이 세상 한 귀퉁이에 나 하나 없다 해도 계절은 돌고 돌 것이며 봄..

living note 2009.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