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엄마는 휴가 중

반야화 2009. 6. 25. 22:40

30년 만에 찾아온 휴가를 즐기려 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보낼 방법도 없지만, 이것이 때로는 빨간 띠를 두르지 않는 파업 같기도 하고 자유가 지나쳐 방종 같기도 해서 어떤 때는 끼니때가 되어 솥뚜껑을 열면 밥이 없거나 국솥에 국이 없을 때도 있다. 아니면 휴업상태 같기도 해서 아침이 되어도 부엌으로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 그냥 음악만 듣고 있기도 하고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방 안에서 잔잔한 선률이 마음을 실어 일몰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먹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일상이 요즘은 먹는 건 별게 아닌냥 내 맘대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날짜도 요일도 알 필요가 없다 딱히 일정에 따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딸들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출가, 가출? 을 해 버리고 나니 마치 30년 만에 얻은 휴가. 휴업, 파업 뭣이라도 좋다. 그러나 정해진 기간은 일 년, 그래서 더욱 소중한 날들에 오늘도 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으로 갔다. 땀은 최대한으로 흘려야 맞바람이 치는 성문에 섰을 때 발산되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장마가 올 때가 되었는데 아직은 물이 차지 않은 가난한 계곡이 갈증을 느끼는데 어느 지점에 다 달으면 작은 물줄기 하나가 빈곤 속에 풍요 같은 타는 속을 싸아하게 채워주기도 한다.

 

엄마라는 직업은 휴가도 없다는 게 너무나 당연시되어 오고 있기 때문에 누구 나한 번쯤 그 임무를 내려놓고 파업 같은 휴가를 원하지만 그렇게 대접해 주는 식구가 얼마나 될까? 아! 난 너무 즐거워, 하루를 마감해도 내일의 걱정이 없고 냉장고가 비어도 채울 의무도 없다. 이렇게 내 맘대로 산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지 떠나 있는 딸들아 섭섭해 마라. 우리 서로 떨어져서도 행복하게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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