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87

병산서원

이번 안동여행의 기록을 쓰다 보니 마지막장에서 알게 된 공통점은 어디를 가나 학문과 만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학자들이 만년에 남긴 안빈낙도의 삶이 한결 같이 고향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었으며 삶의 흔적들을 남겨 잠시나마 후대에게 생의 마무리가 얼마나 아름다워야 하는지 군자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과 오랜 세월 속에서도 그것을 잘 지켜내고 있는 후손들의 노력도 볼 수 있었다. 만휴정, 농암종택, 병산서원, 하회마을을 돌아보면서 청렴결백하게 하게 살았던 분들만 낙향하기를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도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듯이 부귀영화를 원했다면 두메산골 외진 고향으로 찾아들지 않았을 것이다. 서원과 종택을 찾아가는 곳마다 편리한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에도 불편함을 느끼는데..

living note 2023.11.09

안동 만휴정과 월영교

3박 4일간의 여행 일정을 짜는데 안동에서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만으로 여행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가야 할 곳이 동서남북에 산재해 있고 거의 안동 시내에서 멀리 들어가는 농촌마을이다 보니 하루에 두세 번 다니는 버스의 시간을 맞추기란 어려움이 많아서 이틀간은 안동시티투어를 하기로 했다. 시티투어 차를 타면 멀어도 도로가 막히지 않으니 거의 40분 정도면 다 갈 수 있었다. 코스별로 선택해서 예약을 하는데 만휴정, 월영교, 봉정사가 묶여 있는 코스를 선택했고 나머지 하루는 하회마을 코스를 하기로 정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나 좋은 장소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먼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만휴정으로 갔다. 만휴정 가는 길목에는 바로 친정집이 있는 동네다. 거기까지 갔지..

living note 2023.11.07

청량산 고산정

이제부터 고산정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한 가지를 포기하니 마음이 훨씬 여유롭고 포기한 것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얻은 것 같다. 아침안개가 다 걷히기 전에 종택 밑으로 내려가서 낙동강변을 걷다가 위쪽길로 올라가서 가송길로 약 20분을 걸으면 고산정이 나온다. 원래대로라면 이튿날 선비순례길 4코스를 걸어서 육사문학관까지 가려고 했는데 중간에 길이 끊기다시피 좋지 않다고도 하고 그보다 농암종택에서 고산정까지의 그림 같은 풍경이 좋아서 두 곳의 사잇길을 놀며 걸으며 고산정까지 갔는데 와, 이 골짜기에 이런 아름다움이 놓여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강 이쪽저쪽을 건너 다니면서 그 일대 액자 속 그림이 되어 마음껏 즐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에 속하는 가송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living note 2023.11.06

소중한 만남(부산에서...)

인연으로 시작해 필연으로 이어나가는 만남이 있습니다. 무수한 스쳐감이 있지만 만남이 아닙니다. 만남이란 이미 알고 지내는 어떤 대면이겠지만 우리의 만남은 인연의 끈 하나를 같은 길을 가는 마음으로 엮어서 지속해 가는 특별한 만남입니다. 어느 해 해외여행에서 여정을 함께 이어가는 길 도중에서 이루어졌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갈 수 있음은 그분이 나누는 정 때문입니다. 묵묵히 내 길만 가던 그 길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눈길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긴 여정을 함께 했는데 우리 일행이 그 시기에 한창 빠져 있던 올레길을 소개하면서 그분의 취향을 자극했나 봅니다. 그 후 돌아와서도 우리와 합류를 원하셨고 거듭되는 그 길의 축제를 함께 즐기게 되는 걸 보면 만남이 오래 유지된다는 것은 선호하는 것이 같아야 되..

living note 2023.10.10

울산 대왕암과 공원

이번 여행은 경주에 머무르면서 울산을 거쳐 부산까지 돌아보는 코스로 짜인 초가을 맛보기 여행이다. 가기 전에 계획된 일정에는 경주 시티투어 차를 티고 동해안코스인 감은사지, 골굴사, 문무대왕 수중릉 등을 돌아보기로 하고 예약을 했지만 15명 이상이 되지 않아 취소 되고 낙심한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울산에서 가보자였다. 내 생각에는 울산에서 부르는 대왕암이 경주 감포에 있는 것과 같은 장소여서 울산에서도 갈 수 있는 줄 알았다.삼국통일 을 이룩한 문무대왕의 호국정신이 깃든 수중릉을 처음 봤을 때는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도 전이었으니 다시 가보고 싶어서 울산에서 시티투어를 타고 대왕암으로 가는데 차 안에서 투어를 안내하는 분에게 질문을 하자 각각 장소도 다르고 명칭도 다르다는 말을 듣고 낭패한 마음과 다른 모..

living note 2023.10.06

스님의 개인전을 다녀와서....

휴정스님의 서원(誓願)이 된 뜻깊은 팔순기념 개인전을 축하드리고 와서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구도자의 목적이라면 견성성불일 것이다. 말만 들어도 너무나 버거운 그 길을 간다는 건 필부필부들에겐 상상 너머의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다. 그런 구도의 길도 있지만 휴정스님처럼 주지스님이 된다는 것은 포교를 목표로 하고 중생을 깨우쳐 함께 손잡고 부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불도로 이끌어 주는 것도 성불 못지않은 큰 보시라고 생각하며 나 또한 그 길로 들어서서 불자가 되었다. 주지스님으로서의 본분을 지키시며 수많은 인연들을 불도로 이끌어주신 지 어언 40 년을 넘기고 은퇴를 하시고도 그 길의 미련을 못 버리시더니 언젠가부터 또 다른 길을 찾아서 일탈 같이 세상 속으로 나가시더니 용감하게도 일반인들의 사는 맛을 접하..

living note 2023.09.24

경주,부산,울산으로 가을 여행.

첫날 경주, 경주에 가면 첨성대 일대는 꼭 들려본다. 시내에서 가깝고 걸어서 반월성 옛성길과 일대를 걷기에 참 좋다. 사계절 색다른 꽃들이 피어 있고 그 꽃들은 인제나 첨성대와 한 폭에 다 들어가는 그림으로써 사진 찍기의 명소다. 반월성은 발굴이 거의 된 것 같기도 한데 언제나 옛 모습으로 돌아올지 갈 때마다 덮여 있는 성터가 눈에 거슬린다. 발굴 전에는 파란 초원이 좋았는데 요즘은 성 둘레를 걸어보고 한결같은 등 굽은 소나무들과 고목이 되어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성터를 지키는 나무들이 좋아 걷다 보면 성 아래 해자를 잘 정리해 두었고 남천과 월성교를 건너고 교동마을을 거쳐서 황리단길로 걸으며 가장 아름다운 고도를 다 볼 수 있는 짧지만 이쁜 코스다. 축제의 계절인지 반월성에서 어떤 축제가 있는 듯했지만..

living note 2023.09.24

가을맞이 대공원길

고난의 행군과도 같던 지루하고도 버겁던 여름이 드디어 끝자락까지 거두어들이는 것인가. 촉촉하게 젖은 땅에서 가을향기가 올라오고 나뭇잎은 무더위를 견뎌낸 흔적들이 애처러울만큼 말짱한 게 없다. 떠나가는 이의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한데 붙잡고 싶은 사람이어야 향기를 남긴다. 그러나 여름의 뒷모습은 잘 가라는 말 외에 붙잡고 싶은 마음조차 없으니 향기 없는 계절이다. 가을은 안에 있으니 밖에 나가나 다 좋다. 집에만 있어도 쾌적함이 좋고 밖에 나가면 숲 속을 걷기에도 참 좋다. 그러나 가을이라는 말은 계절을 넘어서는 함의를 생각하면 그 속에는 인생행로가 들어 있어 기울어가는 내 생의 가을처럼 쓸쓸함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고 한해살이가 이룬 거 없이 시간만 거두어들이는구나 싶은 생각에 더욱 쓸쓸함이 파고든다.어느새..

living note 2023.09.13

공기처럼 당연했던 바다

늘 있는 바다, 마르지 않을 바다여서 고마운 줄 몰랐어. 마치 공기처럼,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걸 너무 늦게, 이제야 그 존재가치를 느끼고 감사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농사가 없으면 당장 양식 걱정을 하면서 그 양식옆에 함께 차려졌던 찬은 왜 걱정하지 않았을까. 배추만으로 김치가 될 수 없는데 양념걱정은 왜 안 했을까. 바다는 끊임 없이 내어주고 원하면 언제든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여러 가지 해산물과 기본으로 바다에서 구해야 되는 걸 구매목록에 넣고 보니 너무 많다. 멸치만 해도 용도별로 가지 수가 이렇게 많았다니, 디포리, 다시 멸치, 고바멸치, 가이리멸치, 지리멸치 이 중에서 다시 멸치와 조림용으로 가이리를 샀고 멸치젓, 새우젓 김, 다시마, 오징어, 삼치팩, 소금 등등을 샀다. 기..

living note 2023.08.25

뜨거운 단상

입추도 지나고 풋밤이 영글어가는 가을의 문턱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여름이 점점 길어지고 더워는 점점 심해지니 아직은 여름의 정체성이 더 짙어 그 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한동안 여름의 문 뒤에서 서성이게 될 것 같다. 사계절을 석 달씩 사등분으로 나누면 정확하고 뚜렷하던 우리나라 계절이 이제는 봄가을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여름과 겨울은 기세 등등 하게 영역을 넓혀가며 다른 계절을 침범하고 있다. 너무 습하고 더워서 집안을 피서지로 생각하고 지내다가 뒷산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노란 망태버섯이 궁금해서 갔더니 작년보다 좀 늦게 갔다고 어느새 망태버섯은 피었다가 노란 치마는 이미 낡아서 쭈굴쭈굴하고 과감하게 아예 벗어버린 것들이 흉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렇듯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데 그때를 놓치고는 ..

living note 2023.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