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86

기흥호수의 빙상설원

연초의 계획을 세우라는 듯이 끝없는 도화지가 펼쳐져 있었다. 한 해의 시작을 아무도 볼 수 없는 마음의 펜으로 드넓은 백지 위에 서원을 담은 꿈의 씨앗을 뿌리면서 둘레를 걸었다. 꽁꽁 언 호수 위에 덮인 눈이 쉬이 녹지 못해 설원이 되어 있어 보이진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 빼곡히 적혀 있는 것 같았다. 흠집 하나 없는 호수의 설원은 바라보는 마음까지도 백지가 되어버린 것 같아 지난 시간을 다 지워버리고 새 희망으로 채우고 싶어 졌다. 너무 깨끗했다. 너무 순수했다. 한 해의 대문을 열자마자 밀려든 추위는 중순이 지나도록 이어지고 있다. 겨울이 길지만 설산을 누비며 쫓아다닐 때는 긴 줄도 몰랐다. 이제는 바다를 건너지 않고는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재미로 비틀거리던 산행은 할 수가 없다. 겨울 눈을 그..

living note 2022.01.18

동천에서 대장동까지...

늦가을 탄천에서 동막천까지.... 새빨갛게 물들어 활활 타오르던 시간의 조각들이 후드득 떨어지고 땅에는 그것들의 죽음이 돌아가는 길에 잠시 곱게 머무르는데 그걸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쓸려나 자루 속에 꽁꽁 묶여 있다. 이제 무엇이 되려나. 어느 아궁이에 불쏘시개 가 되거나 다른 목숨의 거름이 되리라. 그렇게 시간이란 것이 형체도 없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지나간 시간의 자취는 무언가에 다 남아 있게 된다. 허허로운 빈 가지도 다 시간이 흘러간 검은 자취다. 꽃 피웠고 열매 맺었고 한 뼘 더 키우기 위한 잠자는 시간까지 거기 다 들어있다. 해마다 한 해가 끝나가는 이즘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늦가을 날씨가 좋아 혼자 탄천을 걸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밖으로 나가야 된다. 매일 주어지는 당연한 것이 아..

living note 2021.12.01

서울대공원 둘레길

가을 한 상 가을 한 상 진수성찬 받아 드니 낭만 한 접시 센티멘탈 한 접시 서러움 한 접시 이별 한 접시 어느 시인님이 남기신 말, 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떠나는 이 떠날 때가 언제인지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라고 하셨지 나무야말로 떠날 때를 분명 알고 떠나는 길에 이토록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겨둔 눈물 나는 가을 아! 나 또한 이러하기를.....

living note 2021.11.03

안동여행

2021.10.26~27 길안, 영주 소수서원 선비촌, 무섬마을, 부석사 가을 창밖은 큰 창으로 봐도 쪽창으로 봐도 그림이다. 꽃보다 더 붉은 단풍이 진다. 붉은 선혈 같은 이파리를 떨구며 가을이 깊어지면 친정 생각이 절로 나서 붉은 물결 따라 깊이 들어가면 엄마 없는 친정에 닿는다. 고향땅에는 엄마만큼이나 포근한 오빠 내외가 있지만 어느새 그 오빠도 엄마만큼이나 살아낸 인생을 무겁게 지고도 농사를 짓고 있어 늘 늦가을이 되면 애가 쓰인다. 말로는 일을 도우러 간다고 하지만 정작 마음은 딴 곳에 있는 걸 숨기고 먼 거리를 달려 안동으로 갔다. 가을 해는 짧아서 과수원으로 바로 가도 오전은 훌쩍 꺾어지고 겨우 몇 시간을 사과 따는 걸 재미로 생각하며 따 담다가 재미가 노동이 될 만큼 시간이 지나면 해는 지..

living note 2021.10.28

순천여행의 이모저모

수천 IC를 지나 왼쪽으로 접어들면 잠시 후 순천이 자랑하는 동천이 나온다. 순천 계족산에서 발원해서 순천 시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동천은 잘 가꾸어 놓은 수변공원이 시민들의 휴식처이며 운동공간으로 아주 훌륭했다. 봄이면 강변의 벚꽃이 환상적일 것 같아서 미리 봄 여행지로 예약을 하고 올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연상되는 하천인데 하구에는 순천만이 있어 동천을 따라가면 순천만과 만난다. 여수로 간다. 순천역에서 오랜만에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30분이면 여수 엑스포역에 도착한다. 돌산공원을 산책하고 오동도를 들르고 돌아와 3일째 되는 날 순천만을 보고 주암 저수지까지 드라이브도 하는 일정으로 3박 4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living note 2021.10.17

남도여행(순천)

2021.10.13일 남도로 가는 길은 풍요로웠다.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노란 빛깔의 들판에 풍요와 평화로움의 물결을 타고 고개 숙인 벼이삭 이랑 사이로 낱알을 만지는 가을바람이 놀고 있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흐르는 강물에 빨래를 헹구는 것과 같다. 한 자락 끝을 가만히 잡고만 있어도 흐르는 물이 빨래를 말끔히 헹구어 낸다. 그렇듯 반복되는 일상 한 끝을 잡고 여행길에 오르기만 하면 내 마음은 흐르는 물길 같이 달려가는 차창 밖 풍경의 스침에도 말갛게 씻겨지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들판에는 추억 속의 허수아비가 정겹고 추수를 마친 빈 논에는 하얀 뭉치의 발효가 되어가는 볏짚더미(곤포사일리지)가 설치미술처럼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풍경들이 한 해의 결실이 되어 채워지고 있었다. 남도로 가는 길은 언제..

living note 2021.10.17

종묘와 창경궁

초가을 볕이 따가운 날 서울 나들이를 했다. 고궁에서는 왠지 산책이란 어휘가 맞지 않아 거닐다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여럿이 보다는 혼자 아니면 단둘이 아주 천천히 많은 걸 느껴보는 시간이었으면 해서 딸과 둘이서 주마간산이 아니라 꼼꼼하게 살피며 고궁을 거닐었다. 계절도 봄보다는 가을의 정취가 더 고궁과 어울리는 느낌이어서 단풍 들기 전, 시들어가는 초록들을 보면 조선의 쇠퇴기가 연상되고 왜색을 입지 않으려고 애썼던 어떤 비애 같은 것이 서려 있기 때문에 고궁은 찬란한 봄도, 화려한 가을도 아닌 이즘에 거닐어보는 게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종로3가역에서 만난 세 모녀가 익선동에서 처음 먹어보는 프랑스 음식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큰 딸은 다시 회사로 들어가고 작을 딸과 둘이서 고궁을 거닐었다.. ..

living note 2021.09.16

용인 보정동 고분군

우연히 알게 된 일이다. 혼자 산책을 하면서 길을 따라가다 보니 보정동 고분군이란 이정표가 나와서 계속 길을 따라갔는데 아무리 가도 현장까지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도 끝을 보지 못한 찝찝한 마음이 가셔지지 않아서 결국 다시 찾게 되었다. 처음 가던 길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찾아서 갔다. 길 찾기를 해서 가는 경로는 구성역에서 20분가량 걸으면 되는 길인데 평소에 경부고속도를 가로질러 가는 일이 거의 없어서 초행길인데 그쪽에는 고속도로 아래로 작은 찻길들이 질서 없이 엉켜 있고 인도는 풀만 자라 있는 걸 보니 사람의 통행은 거의 없어 보였다. 물론 다른 길도 있겠지만 구성역을 기점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현장에 가서 보니 장소는 보정동 서쪽 야산 기슭이었고 아래는 삼마곡지라는 낚시터가 있었..

living note 2021.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