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87

용인 보정동 고분군

우연히 알게 된 일이다. 혼자 산책을 하면서 길을 따라가다 보니 보정동 고분군이란 이정표가 나와서 계속 길을 따라갔는데 아무리 가도 현장까지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도 끝을 보지 못한 찝찝한 마음이 가셔지지 않아서 결국 다시 찾게 되었다. 처음 가던 길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찾아서 갔다. 길 찾기를 해서 가는 경로는 구성역에서 20분가량 걸으면 되는 길인데 평소에 경부고속도를 가로질러 가는 일이 거의 없어서 초행길인데 그쪽에는 고속도로 아래로 작은 찻길들이 질서 없이 엉켜 있고 인도는 풀만 자라 있는 걸 보니 사람의 통행은 거의 없어 보였다. 물론 다른 길도 있겠지만 구성역을 기점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현장에 가서 보니 장소는 보정동 서쪽 야산 기슭이었고 아래는 삼마곡지라는 낚시터가 있었..

living note 2021.08.26

비오는 거리에서...

비 내리는 가을 거리를 걸었다. 바람 없는 날 비는 먼 거리를 휘이지도 않고 땅으로 떨어진다. 편한 차림으로 우산 하나 받치고 길을 걷는데 송알송알 비를 달고 있는 이쁜 풍경들을 한가로이 무심으로 만날 수 있어 좋다. 각 처 골 골에서 탄천으로 모여드는 작은 도랑물을 만나고, 비가 힘겨운 왜가리도 만나고, 비를 모은 메꽃이 고운 목덜미로 꿀꺽 빗물을 받아 마시는 모습도 본다. 우산 위에서는 톡톡 튀며 춤추는 빗방울의 리듬을 들으며 비를 만나기 위해 나온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온몸으로 비를 느낀다. 피하고 싶은 비는 우울하지만 온 세상에 움직이는 투명한 선들의 유희 속에 단 한 사람이 된 내가 그 속에 들어 있는 풍경, 얼마나 낭만적인가. 마음으로 먼저 그리고 그 그림이 되어보는 재미에 빠져본 장난 같은 ..

living note 2021.08.24

초가을 풍경

어떤 계절을 처음 맞이할 때는 느끼는 사람에 따라 양면성으로 나타난다. 내게 가을은 그리움으로 치달았다가 대상을 만난 후 떠나가는 두 마음이 삼각형의 꼭짓점 같은 모양새가 된다. 딱히 그 대상이 무엇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아마도 수많은 가을을 맞이하다 보니 이즘의 가을이 주는 상실감 같은 것이 세월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새 그런 가을이 내 앞에 내려서서 삼각형의 꼭짓점으로 이끌고 간다. 행복 속에 불행이 숨어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알고 가는 미련함 때문에 가을이 온다기에 마냥 설레기도 하면서 숨어 있는 상실감을 감추고 치닫는 동안의 좋은 것만 보여주려는 듯 말간 하늘에 흰구름 띄워놓고 청량한 바람으로 살갗을 스치면서 멋진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데 가을의 발원지가 내 마음이라는 걸 깨닫..

living note 2021.08.20

경주 황성공원

발아래 보물이 떨어져 있어도 모르면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경주를 다녀왔다. 수도 없이 다니던 곳인데 꽃이라면 첨성대 주위, 동궁과 월지에 가면 사계절 온갖 꽃들이 다 있기 때문에 굳이 여러 곳에 꽃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요즘은 명소가 있으면 비밀의 장소로 남이 있지 못한다. 이미 오래전에 남들이 다 아는 곳을 나만 늦게 알았다는 말이 맞지만 난 이번 여행에서 경주 황성공원에 맥문동 꽃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을 처음 알았다. 멀리서 그 꽃을 보기 위해서 경주로 여행을 갈 정도로 경주의 명소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동안 늘 갔던 곳, 아는 곳만 쫓아다녔다. 보물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모르고, 경주에 머무르는 동안 비가 와서 꽃을 제대로 못 볼까 봐 조바심을 냈지만 다행히도 오다가다 하던 비는 공원을..

living note 2021.08.14

인테리어의 마술

집을 새로 구하고 3개월 만에 집으로 들어왔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셨지, 움막 같아도 내 집이 좋다고. 비록 환경이 좋은 곳에서 석 달을 살았지만 내 물건이 없는 곳에서의 생활은 불편하기 마련이다. 물건이란 것이 생명은 없지만 늘 곁에서 생명 있는 나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손 닿는 곳에서 조용히 쓰임을 기다리며 있어 주었다. 이제 그 물건들과 만나고 다시 그것들과 난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인테리어를 한 달간 했다. 어쩌다 보니 내 방에 명패가 붙었는데 벽지 색상을 선택하고 보니 하나는 연한 핑크빛 포인트를 넣고 또 하나는 연한 하늘색 포인트를 넣다 보니 식구들이 붙여준 핑크 방, 블루 방이 되었다. 핑크는 올봄에 원 없이 그 꽃 속에서 살던 연달래를 연상했고 블루는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이다. 왜..

living note 2021.06.18

비오는날의 낭만산책

광교 신대호수, 봄비 내리는 산책길은 낭만이 내리는 길이다. 동그란 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평소보다 3시간이 더 걸렸다. 젖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나선 길이어서 신경 쓸 거 하나 없이 신발은 깊숙이 젖고 바짓단 젖어 무겁게 처져도 아랑곳없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걷는 길이 모처럼 느끼는 낭만이란 걸 느끼게 해 준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길은 수목이 우거지고 아카시아, 떼죽 꽃은 하얗게 떨어져 길을 장식하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꽃향기는 비와 함께 내려앉아 빗물 따라 흘러가니 향기 실은 개울물이 호수로 흘러들어 호수 또한 물안개로 향기를 뿜어낸다. 빗줄기는 수직으로 무겁게 내리고 날개 젖은 왜가리도 쉬어가는 호수의 풍경은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그 자체였다

living note 2021.05.17

역사적인 날의 트레킹

2021.2.26일, 첫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 날. 역사적인 날이다. 일 년이 넘도록 전 세계가 겪어내던 코로나19를 종식시키기 위한 백신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접종하는 날이다. 참으로 긴 터널을 두 눈 감고 걸어 나오다가 드디어 약한 동아줄 한 끝을 잡고 따라 나오는 것 같은 날이다. 점점 동아줄의 굵기가 변하고 결국에는 큰 밧줄이 되어 인류 전체를 터널 밖으로 끌어내는 날이 올 것 같은 예감 좋은 날이다. 그동안 잠깐씩 숲길을 걸으면서 인파가 적은 평일과 인원수를 줄여 제한적으로 걸음을 이어 오면서 숲 속에서 잠시라도 마스크를 벗고 긴 호흡을 하고 나면 마치 청량제를 들이켜는 것 같은 공기 맛을 느낄 수 있어 그 재미로 숲길을 걸었다. 오늘은 물길을 따라 걸어본다, 탄천 분당에서 서울 쪽으로..

living note 2021.02.24

동탄,구봉산과 반석산

산을 깎아 신도시를 만들면서 남겨놓은 야산들이 나무높이보다 더 높아져버린 아파트 숲에 가려져 보일 듯 말 듯 남겨놓은 숲이 일대 모든 주민들의 쉼터와 질 좋은 공기를 뿜어내는 역할을 해주니 너무 고마운 존재가 된다. 산이 아니라 공원이 된 그곳에는 수많은 길들이 생겨나서 산을 둘러싸고 있는 동네를 실핏줄처럼 연결해서 어디서 올라오든 돌아나갈 수 있는 하얀 길들이 나목 사이로 철부지 어린 손이 함부로 그어놓은 선처럼 구불구불 그려져 있다. 멀리 가지 못해서 돌아본 주변에 이렇게 좋은 길들이 있다는 걸 요즘 많이 알아가고 있다. 오늘은 아파트 바다에 섬 같은 야산을 걸었는데 마침 눈까지 내려서 호젓한 산길 도화지 같은 눈 위에 첫 발자국들을 만들어가는 재미도 너무 좋았다. 끝인가 싶으면 내리는 눈이 끝이라는..

living note 2021.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