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래 보물이 떨어져 있어도 모르면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경주를 다녀왔다. 수도 없이 다니던 곳인데 꽃이라면 첨성대 주위, 동궁과 월지에 가면 사계절 온갖 꽃들이 다 있기 때문에 굳이 여러 곳에 꽃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요즘은 명소가 있으면 비밀의 장소로 남이 있지 못한다. 이미 오래전에 남들이 다 아는 곳을 나만 늦게 알았다는 말이 맞지만 난 이번 여행에서 경주 황성공원에 맥문동 꽃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을 처음 알았다. 멀리서 그 꽃을 보기 위해서 경주로 여행을 갈 정도로 경주의 명소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동안 늘 갔던 곳, 아는 곳만 쫓아다녔다. 보물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모르고, 경주에 머무르는 동안 비가 와서 꽃을 제대로 못 볼까 봐 조바심을 냈지만 다행히도 오다가다 하던 비는 공원을 산책하고 사진을 찍는 동안 감사하게도 비가 멈추어서 검게 비를 머금은 울창한 소나무 숲 속 아래는 보라색 바탕이 된 맥문동이 너무 아름답고 이색적이어서 감탄을 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지만 멋진 소나무 숲 아래 드넓게 깔려 있는 것은 꽃이라기보다는 지면에 그려진 끝없는 화폭에 담긴 한국화 같았다. 소나무는 고목이면서 쭉쭉 뻗은 곧은 몸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온갖 풍파를 겪어내면서 버티어 낸 시련을 감당한 굴곡진 몸매가 더욱 예술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소나무와 맥문동, 두 조합이 어쩌면 그토록 멋지고 아름다운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절정에 달한 자연의 조화가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던 잡념을 순식간에 다 들어내고 오직 꽃과 하나 되는 보라색 고운 마음만 가득 차게 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어쩌다 나를 이리로 이끌어준 소문 한 줄기에 감사한다.
이번에는 다른 어떤 멋진 풍경을 보지 않고 상경해도 한 점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순간에 젖어서 다른 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돌아와도 좋았다. 올라오면서 잠시 월정교 아래로 흐르는 남천변에 해바라기로 가득 채운 수변공원까지 처음 보면서 산책도 하고, 여름 끝자락을 꽃으로 가득 찬 마음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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