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초가을 풍경

반야화 2021. 8. 20. 08:43

어떤 계절을 처음 맞이할 때는 느끼는 사람에 따라 양면성으로 나타난다. 내게 가을은 그리움으로 치달았다가 대상을 만난 후 떠나가는 두 마음이 삼각형의 꼭짓점 같은 모양새가 된다. 딱히 그 대상이 무엇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아마도 수많은 가을을 맞이하다 보니 이즘의 가을이 주는 상실감 같은 것이 세월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새 그런 가을이 내 앞에 내려서서 삼각형의 꼭짓점으로 이끌고 간다. 행복 속에 불행이 숨어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알고 가는 미련함 때문에 가을이 온다기에 마냥 설레기도 하면서 숨어 있는 상실감을 감추고 치닫는 동안의 좋은 것만 보여주려는 듯 말간 하늘에 흰구름 띄워놓고 청량한 바람으로 살갗을 스치면서 멋진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데 가을의 발원지가 내 마음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가을빛의 세기는 음지와 양지가 극명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가을의 햇살은 인식되지 못한 채 늘 있는 빛이 아니라 오곡백과에는 보약 같은 영양제여서 짧은 기간 동안 그것들을 익혀야 하는 목적이 있는 빛이다. 그래서 양지는 더 따갑고 음지는 서늘함마저 들게 한다. 벼이삭이 피어 있는 풍요로운 논둑길을 걸으면서 저 푸르고 꼿꼿한 벼들이 태풍을 다 피해 가서 올 한 해 농부들의 목표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하늘의 목적이 되기를 기원했다. 아직은 잠잠하지만 벼들에겐 통과의례 같은 태풍이 엄습해옴을 알고 있는 마음 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벼는 익으면 추수가 끝날 때까지 자만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겸손함을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경기 북부는 산지가 더 많을 것 같지만 남부에서 북부까지는 다른 도시 같은 거리 때문에 좀처럼 가지 않게 되고 남부 쪽을 선호하지만 남부의 좋은 길들을 다 걷고 나면 북부의 길을 탐색하고 싶다. 어제 우리가 걸은 길은 의왕시에 있는 바라산 임도와 백운호수 둘레길이다. 산속의 임도에 전 날 비가 와서 촉촉한 황토와 어울리는 초록 속에 고요한 외줄기 길이 너무 아름답고 가을바람 앞세우고 걷는 걸음이 마음 놓고 숨을 쉬게 했다. 요즘은 숨쉬기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다 보니 산속으로 들어가서 자유로운 호흡을 깊이 할 때가 살아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들숨 날숨을 자유롭게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가치 있게 쓴 것 같다. 한 주에 한 번쯤은 깨끗한 숨을 쉬기 위해 떠나야 한다. 자연 속으로.......

백운산 임도 위에서..

백운호수와 멀리 관악산이 선명하다.
그늘이 좋아서 쉬어가도 좋은 한나절의 땡볕

강아지구름

백운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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