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86

2021.새해

새해의 이미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때때옷, 내생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 전 세계가 똑같은 전염병 공포와 싸우는 가운데 역사적인 새해를 맞으며 묵은 때를 씻지도 못한 채 색동옷을 입은 격이니 옷이 몸에 붙지 않고 들떠 있는 느낌이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데 겉치레만으로는 아름다울 수가 없다. 마음의 때때옷은 언제 입을 수 있으려나. 2020 한 해를 바이러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아찔한 단애 위에서 위험하게 버텨냈다. 늪이란 움직일수록 빠져든다. 누군가 손을 잡아줄 수도 없다. 함께 빠지기 때문이다. 한 번 빠지면 홀로 외롭고도 절망적인 싸움을 하지만 팔만은 절대로 늪 위에 두어야 한다. 늪과 단단한 땅의 경계에 십자가 모양으로 버티면서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희망에 걸쳐두는 것이다. 한 발이라도 늪..

living note 2020.12.25

가을의 여운

올여름엔 유례없는 비를 한꺼번에 쏟아내더니 가을 들어서는 비를 내리지 않아 먼지만 날려서 한동안 뒷산에도 가지 않다가 오랜만에 단비를 만나 여름 내 걷던 길로 들어섰다. 바짝 마른바람 타고 흩날리던 가랑잎들이 비에 젖어 차분해진 산길에는 연초 찌는 향기가 물씬 풍겼다. 아직도 잊히지 않은 연초 향기는 내 어린 시절의 진한 고향 향기로 남아 있다. 온 동네가 담배농사로 일 년의 시작과 끝이 되는 연중행사였다. 마지막 과정이 초록색 담뱃잎을 엮어서 높게 지은 토굴에다 층층이 걸어 말리는 건데 잘 마른 것은 잎 전체가 노랗게 익어야 되는데 거기엔 얼룩 한 점도 없어야 일등품이 되고 일등품이 나오면 그해 농사는 성공적이다. 그렇지 못한 것은 이등품으로 팔려 나간다. 연초를 찌는 날은 동네의 큰 행사였고 토굴을 ..

living note 2020.11.18

가을 그림책 2페이지

서울 남산풍경, 가을은 격정의 미가 있다. 빠르고 격렬하게 아름다움을 뿌리고 떠나는, 한바탕 흩뿌려 그려내는 스프레이 아트 그림 같이 빠르게 만들고 끝나버린다. 그래서 곳곳의 가을을 다 볼 수 없어 가을은 늘 아쉬움이 많은 계절이다. 격렬한 색채 속에 뭔가 공허한 여백에 내가 들어감으로 완성되는 것 같은 착각으로 쫓아다니면서 만들어내는 가을 그림책 2페이지를 완성해냈다. 남산의 가을은 성곽 위에 고스란히 아름다움을 내려놓았다. 담쟁이넝쿨까지 다 물들려 놓아 밋밋한 성곽에 포인트를 살려내는 가을의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유려한 손길이다. ***탄천의 가을색*** 탄천에도 가을이 머물다 어느새 벚나무 잎들은 성급하게 잎을 떨구어내고 있다.

living note 2020.10.29

부암동 산책(석파정과 백사실계곡)

일 년에 한 번은 해외로 모녀 여행을 하는데 아쉬운 데로 도심 나들이라도 함께 하는 시간의 소중함으로 하루를 보냈다. 목적지를 부암동으로 정하고 부암동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을 찾아 석파정으로 갔다. 석파정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원군의 별서다. 요즘처럼 길 찾기가 편리한 세상인데도 지도에서 멈추는 곳에서 석파정을 금방 찾을 수 없어 결국 주민에게 물었더니 모르면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대문은 큰 게 있는데 현판에는 삼계동이라고 되어 있어서 아닌 줄 알랐다. 알고 보니 대문은 굳게 잠겨져 있고 출입구는 서울미술관을 통해서 3층으로 올라가면 놀라울 정도로 멋진 숲이 나온다. 도로에서는 석파정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산자락을 파고들어 앉은 듯한 서울 미술관이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석파정은 ..

living note 2020.10.09

경기도 오산 독산성

멋진 가을 풍경이 되던 날, 일 년 전만 해도 자고 나면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했는데 요즘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코로나 확진자의 숫자를 보는 것이다. 그렇게 점점 습관처럼 일상이 되어버린 전염병 한가운데서도 때때로 심신의 활력소를 찾아드는 것도 어쩌면 자기 관리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가까운 곳에 자연 속으로 푹 잠겨보는 것이다. 문리적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의 거리는 더욱 좁혀야 하는 시기에 친구들과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독산성에 다녀왔다. 내 주변에 있는 명소들도 몰라서 가지 못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숨은 명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요즘 먼 곳을 접어두니 보이기 시작한다. 서울의 가을은 약 50일 정도가 된다고 한다. 올해는 워낙 비 오는 날들이 많아서 가을을 맛볼..

living note 2020.09.27

의왕 왕송호수공원

처음 가고 있는 길은 얼마나 먼지 끝까지 가봐야 알듯이 우리는 지금 악조건 속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며 그 길이 어디서 끝날지 알지 못한 가운데 가고 있지만 그 길에도 계절은 바뀌고 꽃이 핀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불행 속에 숨어 있는 행복 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힘든 여정에 잠시라도 꽃을 만나면 행복을 만들 수 있는 소스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제는 제때를 맞아 한창인 연꽃을 보고 오니 오염되었을지도 모를 심신에 꽃물을 들이며 깨끗이 정화된 기분이다. 처음 가고 있는 이 길은 우리 함께 이겨내야 할 코로나의 길이다.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왕송호수는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만든 인공저수지였다가 개발로 인해 농지가 줄어들고 주택지가 되면서 원래의 목적은 쇠퇴하고 레저와 관광목적이 대세가..

living note 2020.07.29

아침단상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창으로 야산 공원을 봅니다. 산이 시퍼렇게 날 서 있는 아침은 보는 순간부터 빨리 나가고 싶어서 두근거립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오늘 아침은 마치 떠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정인 같아서 오래오래 붙잡아 두고 싶은 날씨입니다. 언제 또 오실지 모르는 정인을 만나기 위해 마중이라도 가듯이 서둘러 그 길어 들어서니 길섶에 늘어선 초목들이 다 나를 위해서 말갛게 샤워를 하고 대기하는 것 같아 난 살아 움직이듯 굽이쳐 길게 누워 있는 길을 동무처럼 함께 걸었습니다. 혼자인 듯, 둘 이인 듯 숲 속 식구들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새에게도 말을 걸고 숲에도 말을 걸어봅니다. 그뿐 아니라 귀에는 훌륭한 음악가가 연주를 해주어 아름다운 선률로 리듬을 타게 합니다. 그렇게 오래 붙잡아 두고 싶었던..

living note 2020.07.16

강원도로 여행

강원도에서 여행의 고픔을 채우고 돌아와 다시 이쁜 흔적들을 들여다보니 행복한 포만감이 한동안 여운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의 때를 놓치면서 참아왔던 반년을 보내고 있는 중에 여행길에 오르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다르지 않은지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많이 보였다. 모두가 참는 것에 한계라도 느낀 듯 서로 조심하면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여행은 분명 삶의 조미료 같은 것이다. 무미건조한 생활에 조미료 같은 여행을 곁들이면 삶의 맛이 좋아지고 윤택해진다. 두 번의 전염병을 경험했지만 세 번째 진행 중인 코로나19는 반년이 넘도록 좀처럼 꺼질 줄 모르는 잔불을 묻어두고 있는 듯 조금만 방심해도 되살아 나니 이제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 모습이다. 서로를 견제하면..

living note 2020.06.15

탄천 서울구간

탄천 완주를 하다. 2020.3.13일부터 구간별로 3회에 걸쳐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에서 서울시 청담대교에서 끝나는 데까지 35.6킬로를 걸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 탄천 발원지인 법화산이 있다. 그래서 이 물줄기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해서 물길이 끝나는 곳까지 걸어보고 싶었다. 강가는 그늘이 부족하기 때문에 덥지 않을 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새봄이 되니까 더욱 마음이 들뜨는데 마침 함께 하겠다는 길동무가 있어서 시행하게 되고 끝까지 갔다. 처음 시작할 때는 땅 속에서는 봄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아직 땅 위로 드러나지 않는 봄이더니 두 번째, 세 번째는 완연한 봄이 채색되고 있었다. 탄천의 이미지는 걸러지지 않은 생활하수가 흐르는 냄새나는 하천이었다가 지금은 주변 집값을 좌우할 만큼 복원이 ..

living note 2020.03.30

탄천 용인 구간

발원지인 법화산에서 서울 쪽으로 걷는 게 아니라 성남 정자동에서 마지막 날 용인 쪽으로 걷는다. 어느 날 법화산 정확한 발원지점을 찾아서 88cc 골프장 아래까지 갔지만 찾을 수 없어서 바로 아래인 물푸레 마을에서부터 사진을 찍었다. 눈에 보이는 부분만 관리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언제까지 방치를 할 것인지 무척 속상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상류 없는 하류가 어디 있다고 상류 쪽은 성남에서 본 탄천과는 너무 달라서 같은 하천이란 게 믿어지지 않았다. 물은 더 깨끗하겠지만 주민이 즐겁게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관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공무원, 특히 환경 관리하는 사람들은 탁상행정이 아니라 현장을 돌아보는 근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민원이라도 열심히 받는 창구를 만들어서 민원을 받아서라도 현장을 방..

living note 2020.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