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이미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때때옷,
내생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 전 세계가 똑같은 전염병 공포와 싸우는 가운데 역사적인 새해를 맞으며 묵은 때를 씻지도 못한 채 색동옷을 입은 격이니 옷이 몸에 붙지 않고 들떠 있는 느낌이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데 겉치레만으로는 아름다울 수가 없다. 마음의 때때옷은 언제 입을 수 있으려나.
2020 한 해를 바이러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아찔한 단애 위에서 위험하게 버텨냈다. 늪이란 움직일수록 빠져든다. 누군가 손을 잡아줄 수도 없다. 함께 빠지기 때문이다. 한 번 빠지면 홀로 외롭고도 절망적인 싸움을 하지만 팔만은 절대로 늪 위에 두어야 한다. 늪과 단단한 땅의 경계에 십자가 모양으로 버티면서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희망에 걸쳐두는 것이다.
한 발이라도 늪지대로 들이지 않으려고 내 자리에서 지나온 시간들이 어디로 흘렀는지 어느 곳에도 쌓인 흔적 없이 소멸되어 갔다. 그런 중에서도 희망이란 것을 암중모색하려는 노력에서 어쩌면 새해에는 바이러스 사체가 거름이 되어 늪에서 한송이 고고한 연꽃을 피울지도 모른다. 한송이 연화가 화사하게 피게 되리라는 믿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지난 한 해는 어떤 목표나 시간의 설정 없이 그저 흘러가는 오염된 시간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새해는 뭔가 다를 거라는 마음으로 열두대문의 첫 문을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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