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ㆍ수원화성의 설경

반야화 2021. 1. 13. 20:00

2021년이란 숫자가 생소한 가운데 하루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모래알처럼 솔솔 빠져나간다. 어느새 첫 달의 중순이 지나는데 올해는 새해 벽두부터 겨울다운 매운맛이 참 좋다. 무엇이든 그 다울 때가 가장 아름답다. 작년에는 겨울꽃으로 장식된 가로수를 보지 못한 채 지나가더니 유례없는 벌레들이 담장을 기어오르고 산에는 나방들이 눈앞을 가릴 정도로 많아서 올 겨울은 많이 추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한강이 얼 정도면 병충해는 덜하지 싶다. 올 들어 두 번째 설경 속으로 들어가 하얗게 걸었다. 밤에 눈이 시작되자마자 약속을 잡고 빨리 볼 수 있는 도심의 수원화성으로 갔다.
5명 이상 모이지도 못하고 여행도 못 가니 두 사람 정도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가도 무방할 것 같아서 서둘러 갔는데도 기대했던 만큼은 눈이 기다려주지 않았다. 오늘은 길게 춥던 매운 날씨 위로 봄 같은 따스함을 살짝 덮어 둔 것처럼 포근해서 차도는 질퍽였지만 서둘러 간 곳에는 때도 묻지 않은 눈길이 너무 좋았다.

몸이 갇혀 있으면 왠지 정신적 빈곤을 느낀다. 그런 마음이 길어지지 않게 마음속 풍요를 채워주는 건 역시 좋은 길을 누구와 함께 걷는 거다. 언제까지 시대적 요구에 인내해야 할지 모르지만 인내는 참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는 것이란 말이 역설적인 것 같지만 달리 생각하면 참는 것은 포기일 수도 있으니 힘든 것을 계속하는 것이 인내라는 생각이 든다.

첫눈이 내리던 날 남한산성을 걸었고 두 번째 눈길은 수원화성에서 걷고, 연초부터 멋진 설경 속에서 풍경을 윤색하는 포인트처럼 우리는 눈 위에 서 있었다. 수원화성의 길게 이어진 직선거리가 남한산성의 곡선미에 미치진 못하지만 그 또한 다르다는 의미에서 곧은 멋이 있다. 성 안쪽을 걸을 때는 여장을 보면서 걷지만 성 밖을 걸으면 높은 성체가 멋있게 보이고 길게 이어진 선이 장대하면서도 기운차 보인다. 그래서 난 성체 밖에서 높고 긴 성벽을 보는 것이 즐겁다. 한 해의 출발선상이 참 좋다. 좋다는 말은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때 쓰는 어떤 대명사처럼 쓰이는 표현의 궁극이라고 하잖아. 하얀 눈 위를 걸으면서 한해를 열어가는 시간이 그냥 너무 좋다는 말속에 한 해의 모든 시간들을 포함해서 잘 간수하고 싶다.

장안공원에서 출발

수원 성내마을의 전경

철쭉관목에 하얀 철쭉이 피어 있는 것 같다.
팔달문

방화수류정과 용연

동북공심돈,동북쪽에 세운 망루인데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수원화성에만 있는 돈대라고 한다.원통형으로 만들어졌고 둥근벽에는  여러개의 총안이 있다.안에는 나선형의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는 구조다.

방화수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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