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여행의 고픔을 채우고 돌아와 다시 이쁜 흔적들을 들여다보니 행복한 포만감이 한동안 여운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의 때를 놓치면서 참아왔던 반년을 보내고 있는 중에 여행길에 오르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다르지 않은지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많이 보였다. 모두가 참는 것에 한계라도 느낀 듯 서로 조심하면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여행은 분명 삶의 조미료 같은 것이다. 무미건조한 생활에 조미료 같은 여행을 곁들이면 삶의 맛이 좋아지고 윤택해진다. 두 번의 전염병을 경험했지만 세 번째 진행 중인 코로나19는 반년이 넘도록 좀처럼 꺼질 줄 모르는 잔불을 묻어두고 있는 듯 조금만 방심해도 되살아 나니 이제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 모습이다. 서로를 견제하면서 지내야 하는 삭막한 생활에 우리도 여행이 필요했다.
작은딸 내외를 대동하고 떠나는 강원도 여행길에 먼저 영월 청령포와 장릉을 들르고 정선 하이원 리조트로 가서 데이지 꽃밭을 보고 운탄고도를 트레킹 하는 여정이다. 서강과 동강을 스쳐가면서 정선군 사북면, 그 깊은 골짜기에 이르니 드넓은 부지가 있다는 것도 놀랍고 놀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다 준비된 리조트가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해지기 전에 먼저 숙소인 마운틴 콘도에 들어서서 커튼을 열어젖히니 정면에 시퍼런 강원도의 산세들이 청록색 계열의 원근감이 주는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놓고 있어 창틀로 된 액자 속에 한 폭의 산경이 곽 들어찬 한국화를 감상하는 듯했다.
추억은 마음의 양식이 되는데 언젠가는 육체의 날개를 접어야 하는 그날을 위하여 맛있게 꺼내먹을 추억의 양식을 강원도의 깊은 산골에서 딸과의 정담으로 또 하나의 곳간을 채우는 재미에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맥주를 마시면서 밤을 사위고 있었다. 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가.
강원도 기념물 제5호, 서강의 곡류가 마치 침범을 할 수 없는 신성의 땅을 보호라도 하듯이 고요히 돌아 흐르고 있는데 강폭이 넓지 않아서 섶다리를 놓을 수도 있어 보이지만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운치도 더하는 하나의 풍경이다. 배를 타고 내리면 송림 속에 단 종어 소가 있고 등 굽은 소나무 한 그루가 어소를 향하여 문안을 드리는 모습으로 담장을 넘어 세월만큼 길어진 허리로 일어설 수 없는 충신의 모습이 되어 있다. 울창한 송림의 중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높이 30미터 수령 600년으로 추정하는 관음송이 있다. 그 큰 나뭇가지에 후세를 두지 못한 단종을 뜻하는지 솔방울 하나 달지 않고 있다. 그 외에도 영조가 세운 금표비, 노산대 망향탑, 등이 있다.
단종 어소, 1457년 홍수를 피해 관풍헌으로 이어하면서 불과 두 달 정도 살았지만 이곳은 이미 단종애사로 점철되어 우리들 마음엔 영원한 슬픈 역사로 남아 있으니 죽어도 잊히지 않으면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그 후 500년이 훌쩍 흐른 후 현대의 눈으로 보면 마치 휴양지 같은데, 이 멀리에 보냈으면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정치의 희생만 아니었으면 어린 단종에게도 분명 좋은 휴양지가 되었을 텐데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영원히 구정물이구나.
관음송, 높이 30미터 수령 600년으로 추정하는 천년기념물이다. 빽빽한 송림 가운데 우뚝한 몸통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소나무 같은 모습으로 한 몸에 2세를 키우고 있는 듯한 모습이 특이하다.
단종릉인 장릉
단종을 추모하고 있는 단종의 원찰인 보덕사 일주문,
보덕사의 느티나무는 거의 35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보호수다.
보덕사 해우소, 1882년에 지은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 화장실이며 앞 뒤 12칸으로 120년의 역사를 간직한 원형이 잘 보존된 희소한 건축물. 이 해우소를 보기 위해 보덕사를 찾았다.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해우소의 원목이 손상된 것이 없어 보인다.
보덕 사내 극락보전, 신라 문무왕 때 668년 의상조사가 창건, 그 후 개칭과 증축을 거쳤으며 세계유산 사적 196호로 지정되었고 해마다 4월 말 단종제향 시 단종 추모 영상 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강원도 문화제 제23호, 단종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극락보전은 영월 장릉의 수호 사찰이며 매년 4월 말 단종 제향 시 단종 추모 영상 대제를 봉행하고 있는 단종 원찰이다. 불상은 목조아미타삼존불 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본존 아미타 불상 좌우 협시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 원문이 발견되어 조선 숙종 13년인 강희 26년 1687년에 탁밀비구가 수화승(首畵僧)을 맡아 조성했다는 불상임이 밝혀져서 제작 시기와 작가를 알 수 있는 것이 특별하고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단종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단 종어각
이제 정선 하이원으로 왔다. 창으로 보이는 산세의 원경
야생화인 데이지가 곳곳에 하얀 무리를 지어 이곳의 유명세를 짐작하게 해 준다.
데이지 군락의 메인 장소, 겨울눈이 사라진 곳에 마치 눈이 꽃씨를 심어 두었듯이 눈 녹은 자리에 여름 눈꽃인 데이지가 피어나서 일데 장관을 이루고 있다. 1000미터가 넘는 산골짜기에서 꽃물이 흘러내리는 계곡 같은데 한 줄기 외길이 뱀처럼 꿈틀대고 있다.
운탄고도 들머리, 혼자의 생각이지만 정서적 실수를 했다. 1000미터가 넘는 정상에서 트레킹을 하면서 보이는 아래가 마치 구름 양탄자가 깔린 듯해서 지어진 명칭인 줄 알고 멋진 그림을 상상했더니 과거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어서 운탄고도라는 걸 알고 나서 숙연해졌다. 이름에 분명 양면성이 있는 것은 맞으나 과거를 초래해서 그 시대를 느껴보고 이 길 가장 추운 곳에서 가장 따뜻함을 제공받은 감사함도 함께 느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운무가 너무 짙어서 들어서기가 두려워서 포기했지만 충분히 어떤 코스가 전개될지 상상은 할 수 있었다.
운탄고도를 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무릉계곡으로 왔다.
무릉반석이 있는 계곡인데 여름 산행 일정에서 몇 번의 기회를 놓치고 이름의 유래에서 무척 궁금했던 계곡을 처음으로 봤다. 직접 가서 보니 이름값을 하는 것은 5000 제곱미터가 넘는 반석에 한쪽으로는 물이 흐르고 하얀 화강암 화선지 같은 반석에다가 시어들이 빽빽한 걸 보니 수많은 한량들이 이곳에서 무릉도원에 잠긴 듯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에 향교가 폐강된 울분을 달래기도 했다니 그 울분들이 그대로 반석에 새겨 놓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용오름길, 계곡 물속에 검은 선이 뚜렷이 보인다. 삼화동 초입 계곡에서부터 용추폭포까지 6킬로미터나 되는 선이 있다는 게 신기한데 암석의 성분 때문이라고 해도 차라리 전설을 더 믿고 싶을 정도로 특이하다. 신라 흥덕왕 4년 829년 창건 당시 약사 삼불 백, 중, 계 삼 형제가 서역에서 동해로 용을 타고 왔다는 전설이 있다.
시간도 없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길게 오르지 못하고 계곡 따라 한 고개 넘어서 관음암까지 왔다.
두타산과 청옥산이 비슷한 높이로 우뚝한 산경이 이제는 왜 그렇게 멀고 높게만 느껴지는지, 천 미터를 넘지 않으면 동산으로 생각하고 높이높이 오르길 좋아했는데 내 기대치가 점점 쪼그라드는 건지 날씨 탓인지 저 높이가 감당이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