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3일
남도로 가는 길은 풍요로웠다.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노란 빛깔의 들판에 풍요와 평화로움의 물결을 타고 고개 숙인 벼이삭 이랑 사이로 낱알을 만지는 가을바람이 놀고 있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흐르는 강물에 빨래를 헹구는 것과 같다. 한 자락 끝을 가만히 잡고만 있어도 흐르는 물이 빨래를 말끔히 헹구어 낸다. 그렇듯 반복되는 일상 한 끝을 잡고 여행길에 오르기만 하면 내 마음은 흐르는 물길 같이 달려가는 차창 밖 풍경의 스침에도 말갛게 씻겨지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들판에는 추억 속의 허수아비가 정겹고 추수를 마친 빈 논에는 하얀 뭉치의 발효가 되어가는 볏짚더미(곤포사일리지)가 설치미술처럼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풍경들이 한 해의 결실이 되어 채워지고 있었다.
남도로 가는 길은 언제나 따스하다. 반겨주는 사람 있고 그리운 장소가 있어 그곳으로 가면 멀리 있어도 묻어오는 은목서 향기가 온몸에 스미어오는 듯했다. 가을이면 남도에만 핀다는 목서의 단아한 수형과 잎들 사이사이로 피어나는 하얀 꽃들이 마치 다듬어진 나무처럼 너무 아름답고 향기로워 그곳으로 이끌려 갔더니 어느새 남도의 가을은 깊어가고 성근 나뭇잎 사이로 드러나는 검은 나뭇가지의 균형 잡힌 몸매에는 다른 계절이 깃들어 가는데 그것조차 멋스럽게 보이는 가운데 여행이 시작된다. 여행은 속박 없는 속박에서 벗어나듯 마치 아무에게도, 어떤 것에도 길들여지지 않은 것 같은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시간이 된다. 그래서 좋고 그래서 필요하다. 질곡과 자유, 그 대치어를 해방이라는 하나의 뜻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시간이 너무 좋다. 자유와 질곡 사이를 드나들면서 살아온 시간들이지만 여행 속에는 언제나 자유만 있다.
다음 여행지는 와온해변에 가서 일몰 풍경에 함께 물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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