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6~27 길안, 영주 소수서원 선비촌, 무섬마을, 부석사
가을 창밖은 큰 창으로 봐도 쪽창으로 봐도 그림이다. 꽃보다 더 붉은 단풍이 진다. 붉은 선혈 같은 이파리를 떨구며 가을이 깊어지면 친정 생각이 절로 나서 붉은 물결 따라 깊이 들어가면 엄마 없는 친정에 닿는다. 고향땅에는 엄마만큼이나 포근한 오빠 내외가 있지만 어느새 그 오빠도 엄마만큼이나 살아낸 인생을 무겁게 지고도 농사를 짓고 있어 늘 늦가을이 되면 애가 쓰인다.
말로는 일을 도우러 간다고 하지만 정작 마음은 딴 곳에 있는 걸 숨기고 먼 거리를 달려 안동으로 갔다. 가을 해는 짧아서 과수원으로 바로 가도 오전은 훌쩍 꺾어지고 겨우 몇 시간을 사과 따는 걸 재미로 생각하며 따 담다가 재미가 노동이 될 만큼 시간이 지나면 해는 지고 빨간 보석 같은 사과는 바구니에서 찬이슬을 맺게 두고 숙소로 향했다. 안동 시내 언덕에 있는 숙소를 정하고 구시장에서 안동 별미인 닭볶음탕을 먹고 들어가니 언덕 위의 집은 이쁘게 밤 풍경을 보여주었다.
이튿날 딸 내외와 영주투어를 시작하면서 먼저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보고 작은 마을의 고택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소수서원으로 가서 지난번에 다 보지 못한 서원을 탐방하고 함께 볼 수 있도록 붙어 있는 선비촌도 보고 선비들의 식단으로 점심을 먹은 후 조금 이동해서 영주 부석사 가을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유명한 건 찾아가지 않아도 본 것처럼 너무 익숙해져서 오히려 늦게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부석사를 찾아가는 건 처음이었다. 구름 같은 소백산을 뒤에 세우고 있는 부석사는 붉게 물들었고 경내는 고요 속에 묻혔고먼 하늘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나는 그렇게 가만히 안양루에 기대어 선 채로 내 얼굴에도 붉은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한없이 아름다운 송강사에 비하면 보통의 중후한 고찰이지만 안양루 앞에 서면 아름다움보다는 지켜낸 세월의 무게감에 절로 손 모아 고개 속이게 된다. 한 층 더 위에는 그 유명한 무량수전이 산하의 속세를 굽어보는 자리에 안양루와 쌍벽을 이루며 더 깊은 세월 속으로 끌어들인다. 하찮은 내가 몇 생을 지나 이곳에 섰는가, 다시 몇 생을 거듭해도 그 자리에서 중생구제를 해주시고 이 땅에 미륵부처님의 하강을 기원하며 타락한 사바를 극락정토로 만들어 주시기를 함께 기원하고 돌아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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