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볕이 따가운 날 서울 나들이를 했다. 고궁에서는 왠지 산책이란 어휘가 맞지 않아 거닐다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여럿이 보다는 혼자 아니면 단둘이 아주 천천히 많은 걸 느껴보는 시간이었으면 해서 딸과 둘이서 주마간산이 아니라 꼼꼼하게 살피며 고궁을 거닐었다. 계절도 봄보다는 가을의 정취가 더 고궁과 어울리는 느낌이어서 단풍 들기 전, 시들어가는 초록들을 보면 조선의 쇠퇴기가 연상되고 왜색을 입지 않으려고 애썼던 어떤 비애 같은 것이 서려 있기 때문에 고궁은 찬란한 봄도, 화려한 가을도 아닌 이즘에 거닐어보는 게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종로3가역에서 만난 세 모녀가 익선동에서 처음 먹어보는 프랑스 음식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큰 딸은 다시 회사로 들어가고 작을 딸과 둘이서 고궁을 거닐었다.. 익선동은 처음으로 갔다. 처음이란 것은 늘 몰랐다가 알게 된 것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서울의 4대 문 안에 대표적 거리인 종로가 있고 서울의 동서를 가르는 옛 거리 좌우에 아직도 남겨 놓은 한양의 거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익선동이다. 한옥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덕에 겨우 겉모습만 남아 있고 거리는 넓힐 수 없어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건축물은 좁은 대문을 열면 공간이 넓어져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들어내고 현대식으로 개조가 되어서 특색 있는 점포들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현대의 삶에 지친 사람들이나 서울을 찾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붕은 섯가래를 그대로 살려 칠을 하고 노출시켜서 멋을 부리고 낮은 천장은 밑바닥을 파내어 높이를 조절하고 현대식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현대의 감각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한옥이지만 옛날에는 4대 문 안에 있는 것이라면 다 사대부의 고관들의 집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내부를 보면 홑집이 아니라 본체와 행랑체를 갖춘 측면 겹집이어서 공간을 튀울 수도 있고 새롭게 인테리어를 하니까 공간이 꽤 넓었다. 종로 3가에는 고궁과 종묘, 4대 문 안의 삶의 터전이 있는 고전과 현대가 공존하는 유일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