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정스님의 서원(誓願)이 된 뜻깊은 팔순기념 개인전을 축하드리고 와서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구도자의 목적이라면 견성성불일 것이다. 말만 들어도 너무나 버거운 그 길을 간다는 건 필부필부들에겐 상상 너머의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다. 그런 구도의 길도 있지만 휴정스님처럼 주지스님이 된다는 것은 포교를 목표로 하고 중생을 깨우쳐 함께 손잡고 부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불도로 이끌어 주는 것도 성불 못지않은 큰 보시라고 생각하며 나 또한 그 길로 들어서서 불자가 되었다.
주지스님으로서의 본분을 지키시며 수많은 인연들을 불도로 이끌어주신 지 어언 40 년을 넘기고 은퇴를 하시고도 그 길의 미련을 못 버리시더니 언젠가부터 또 다른 길을 찾아서 일탈 같이 세상 속으로 나가시더니 용감하게도 일반인들의 사는 맛을 접하시고 잠재의식 속에 고이 묻어 두셨던 재능을 끌어내 승복은 입었으나 마음은 세속인들과 어울리는 법을 터득하시고는 아, 이런 길도 있구나 하고 느끼셨는지 어느날부터 서예와 민화에 푹 빠지셨다. 그러더니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도전 정신으로 팔순에 전시회를 열겠다는 목표를 세우셨다.
가끔 경주에 가면 커다란 방에 벽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온 방에 그림과 글씨를 널어두신 걸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끝을 보시겠구나. 은퇴 후에 찾아온 공허함을 그림으로 채우시려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내면이 차면 힘들어서 절필을 하시겠지라고 생각한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내려갈 때마다 그림이 늘어나고 글과 그림이 더욱 빛이 났다.
스님은 목적이 아닌 목표를 향해 치닫고 계시는 거구나. 목표라면, 왜 그걸 꼭 해야 되는지 의문이 생기지만 목표는 내가 세운 어떤 지점에 닿기 위한 것이다. 스님이 팔순기념 개인전이란 목표를 세우고 의문점 없이 오르고 계시는 걸 봤다.
스님의 뜻이 결실이 되어 드디어 팔순을 며칠 앞두고 개인전을 여는 날 내려가서 뜻깊은 행사에 축하를 드리고 나니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만큼이나 좋았다.소박한 전시장에는 파안대소 하시는 스님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이 걸리고 벽을 아름답게 장식하듯 내걸린 작품들에 감동이 밀려왔다.
질곡과도 같은 사십 년 불심길을 걷다가 은퇴를 하셨으니 얼마나 허전하셨을까. 그래서일까 잠재된 예능을 일깨워 한 끝을 잡아당기니 화수분 같은 재능이 쏟아져 절대음감 같은 청음으로 배운 적이 없다는 피아노로 유행가를 치시더니 또 한 번 내려갔더니 이번에는 그림을 그리고 다음엔 서예를 하시는 걸 보고 그제야 타고난 예능의 기질이 잠재돼 있었구나 하고 느꼈다.
옛 등걸에 작은 싹 하나가 자라나 재목이 되듯 염불정진 하는 마음으로 그려낸 스님의 작품들은 또 하나의 길을 만들어내신 아마추어지만 예술인이 되셨다.
경주 보문단지로 가는 길은 벌써 가을이 내려앉았다.
휴정스님의 문방사우 중 붓이 나란히 걸려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전시회가 열리는 날 손님께 차 대접을 하시는 고마운 분들.
휴정스님과 함께
부처님 탄생도
어울림
풍요
왼쪽부터 제목은
소식, 만개, 백년해로
나들이
왼쪽에서 속삭임, 모란과 손님들
관세음보살도
향기와 환희
부귀장춘
미소와 연정
법구경과 한승의 시,
붓을 손에 잡은지 4년만에 이토록 떨림 없이 글을 쓰신 대단한 예인이십니다.
좋은 글 중에서, 나옹선사 글
왼쪽, 가을아침 바람을 적다와
밥구경 분노품
법구경 호회품, 법구경 술천품
법구경 도장품, 법구경 명철품
법구경 안녕품, 법구경 애신품
윤선도 오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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