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86

내곁에 고마운 것들

수없이 겪어온 "힘들어"라고 하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져서 지금 겪고 있는 것에 가장,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된다. 해마다 겪는 더위도 그렇다. 지난해도 삼복더위는 넘어가기 힘든 고개였지만 지금은 올여름이 가장 덥다고 느껴진다. 점점 더 체력적으로 적응력이 약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사계절을 날씨 같은 건 아무 문제도 안되던 시간들도 있었다. 삼복더위에도 얼음물을 몸속으로 들어부우면서 산행을 즐겼고 땀으로 옷이 다 젖으면 바람과 만났을 때 시원해서 더 좋다고 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게 싫어진다. 땀에 젖어 달라붙는 옷도 싫고 힘들게 오르는 것도 싫다. 평소에 아무 느낌 없이 당연하던 것들에 대해서 새삼 고마움을 느끼는 것들이 참 많다. 바로 가전제품들이다. 누구나 다 쓰고 있는 물건들이 그..

living note 2024.07.31

연꽃탄생

극과 극을 견디는 경이로운 연꽃의 탄생, 언 땅 속으로 깊이 침잠해 겨울을 견디며 극락세계를 꿈꾸고 혹서기에 절륜한 아름다움으로 태어나 사바에 극락을 펼치는 모습이다. 인고의 고행 끝에 찾아온 구도의 결실이 꽃밭이 된 연못은 성불의 갈애가 피어난 것인가. 긴 겨울 언 땅에 뿌리 박고 어떤 염원의 꿈을 꾸었을까. 바탕은 검어도 뜻은 하얗게 피어나는 꽃밭으로 이끌려 가는 것은 시절인연 때문이다. 중생의 검은 미혹을 씻으러 찾아가는 길이 되길 염원하며 잠시의 사색을 뿌려본다.꽃고무신 나란히 벗어놓고 어디로 떠났을까의왕 왕송호수 물양귀비 낙엽귀근의 뜻이 순리다.

living note 2024.07.13

새벽달과의 랑데부

어떤 시선이 느껴지면 쳐다보듯이, 달님이 내 잠든 모습을 얼마나 들여다봤길래 끄달림이 일어났나, 새벽 찬공기에 잠을 깨니 어둡던 방에 은은한 달빛이 들어차 있네. 별을 잠재운 하늘에 달만 있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 나만 깨어나 달과 나, 우리 둘의 랑데부는 서로의 시선으로 집중되어 허공에 직선을 그렸네. 검은 숲, 아파트숲, 새벽하늘 삼 단 구도에 맞닿은 시선 두 개만 있는 이 멋진 한밤중의 랑데부에 잠을 날려도 좋았다.새벽 3시 40분에 달을 보고, 글을 쓴 후, 그리고 난 밖으로 나갔다. 밤새 노래를 불러주던 라디오가 애국가를 토해내고 동해물과 백두산도 다 깨어났을 시간인 아침, 5시 반에 긴 그림자 앞세우고 걷다 보니 어느새 내 키만 해진 그림자와 함께 산책한 후, 강으로 나가서 숲을 통과해 집으로 ..

living note 2024.06.25

용주사와 융건릉

여름 초입인데 벌써부터 무더위가 느껴진다. 여름이 길어지는 기후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앞으로의 삶과 의식주까지 변화가 올 것 같다. 어떤 대비를 할 수 있다기보다는 흐름에 잘 따라가야 할 텐데 하는 약간의 걱정이 앞선다. 우리들의 걷기에도 방학이 있어서 작년에는 삼복더위를 피하여 방학하자며 쉬었는데 올해는 우리들의 짧은 방학도 앞당겨질 것 같다. 아직은 땡볕에 나가지만 않으면 그늘은 시원해서 견딜만하니 숲이 좋은 수목원이나 왕릉 같은 곳이 좋다. 걸음은 좀 짧아지겠지만 그 또한 여름 나기의 한 방법이다. 수도권에는 왕릉이 많아서 찾아가면 다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고 관리받는 일품 숲이어서 너무 좋다. 숲에서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느리게 걷다 보면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아침 아홉 시가 되어야 ..

living note 2024.06.19

단상

물속에도 황혼빛이 감돌고...하루가 저무는 시간 때, 스스로 달아올라 불타던 태양이 제풀에 지쳐고 꺾여서 기운을 잃고 사그라들 즘이 가장 좋은 시간이다. 아침해처럼 너무 뜨겁지도, 너무 눈부시지도 않은 순한 빛줄기 아래 길을 걷다 보면 뜨거움에 지쳐 있던 나무들도 처진 잎을 고추 세우며 어슴푸레한 황혼을 나만큼이나 좋아하는 것 같다.개망초, 잡초에도 급이 있다. 버려진 빈공터를 하얗게 장식한 개망초꽃밭, 길가에 터를 잡은 친구들이 예초기 칼끝에 스러져갈 때 맘 졸이며 지켜보던 망초들이 잡초였다면, 울타리 안의 망초는 화초가 된다. 망초들이 힘을 합쳤는지 다른 풀들은 무리 속에 끼어들어 꽃이 되지 못한다. 울타리 속의 망초는 얼마나 안전함을 느꼈을까, 마치 스스로 만든 정원처럼 안전하고 아름답게 한 살이를..

living note 2024.06.18

경기남부의 호수투어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경기남부에는 물의 도시라고 하는 수원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용인, 서쪽 으로는 의왕과 화성을 비롯해 많은 호수들이 있다. 하나의 테마로 지정해서 투어를 해도 될 만큼 호수가 많고 규모도 거의 한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비슷한 크기여서 둘레를 돌며 느리게 산책도 하고 빠르게 뛰면서 운동도 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며 또한 거의 수목원 같은 숲을 갖추고 있어서 풍경도 너무 아름답다. 호수만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니라 일대를 지역의 공원으로 가꾸어져서 갈 데가 참 많은 경기남부는 서울이 부럽지 않다. 그동안 내가 가 본 호수는 수원을 중심으로 어제 갔던 일월호수와 서호(축만제), 신대호수, 원천호수, 광교호수가 있고 용인에 있는 기흥호수, 의왕에 왕송호수,동탄 호수공원, 백운호수, 낙생호수, ..

living note 2024.06.06

장미와 풀꽃

계절의 여왕이 꽃의 여왕을 키워냈다. 세계각국의 장미를 키우고 있는 장미의 축제장이다. 산에서는 철쭉을 끝으로 꽃물결이 지나갔고 인위적으로 키워낸 장미가 그 빈 꽃자리를 채우고 있다.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장미의 종류가 눈부시다. 화려함에 비해서 향기는 찔레꽃에 미치지 못한다. 향기는 꽃의 영혼이라고 하는데 겉모습은 눈으로 보고 향기는 영혼으로 본다. 눈으로 봐도 아름답고 영혼으로 봐도 아름답다면 그 완벽함이 얼마나 교만해질까. 겉모습도 순수하고 영혼까지 순수한 아기자기한 풀꽃을 무척 좋아한다. 연인에게 장미 한 다발 안겨주면 영혼이 비어도 덥석 받아 줄 것 같은 장미에 비해, 작고 보잘것없는 풀꽃은 겉모습에 취하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서 꽃의 영혼인 향기를 맡을 줄 안다면 그게 성공하는 연인들의 ..

living note 2024.05.23

구리 동구릉

경주에 살 때 하나의 산 같은 신라시대의 왕릉만 보다가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조선시대의 왕릉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으로 집 근처에서 선정릉을 봤고 다음에 서오릉 등 여러 왕릉을 돌아봤지만 그중 조선 태조의 능이 가장 보고 싶었다. 당시 사대문 안에는 묘를 쓸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태조도 예외 없이 사대문 밖 비교적 가까운 구리에 능을 조성했는데 유언에 따라 고향인 함흥의 억새와 흙으로 능침을 조성했다고 해서 더욱 보고 싶었다. 가장 좋은 계절 오월에 구리에 있는 동구릉에 갔더니 들어서자마자 오월의 향기로 가득했다. 색이 고운 작약향부터 음미를 하고 능원 전체를 향이 깔리도록 떼죽꽃으로 하얗게 장식되어 있는 듯했다. 숲도 일 등급인데 향기로 가득한 방대한 능원 전체가 사후세계가 아니라 후..

living note 2024.05.18

안동 만휴정과 묵계서원

청송으로 가는 옛길은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가지만 풍경이 아름다워서 좋았고 새로 생긴 고속도로로 청송 가는 길은 가깝고 운전하기에 편해 보여서 좋았다. 온통 산지인 곳을 수많은 터널을 뚫어서 이어진 서산 영덕간 길이 산골 사람들의 생활에 편리를 주면서 충청남도 서산에서부터 영덕까지 이어지는 330.8킬로나 되는 긴 도로다 고속도로로 청송 가는 길에 지난 늦가을에 갔던 만휴정의 봄풍경은 어떤지 다시 들려보았더니 물도 더 많고 푸른색에 잠겨 있는 정자와 일대 풍경도 더 아름다워 보였다.창밖으로 길안천을 보면서 지나간다.사과꽃이 한창인 과수원도 보고...숲에 싸인 만휴정.지난번에 보지 못해 아쉬웠던 묵계정자도 들려서 고택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창으로 보이는 사과꽃을 고향의 꽃으로 감상하는 재미도 좋았다.묵계서원..

living note 2024.04.27

올림픽공원에서.....

모든 꽃이 일시에 왔다가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봄부터 겨울 눈꽃까지 꽃은 끊임없이 피고 진다. 꽃다울 때는 꽃을 모르다가 꽃에서 멀어지니 꽃을 알고 꽃이 좋아진다. 어쩌면 꽃다운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늘 그렇겠거니 하면서 소홀하게 흘려보낸 게 아쉬움이 남고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 아릴까 싶다. 지난해 우연히 만났던 꽃나무가 아주 특별해서 그 때 못 본 친구들과 다시 찾아갔는데 때를 알고 갔지만 늘 조금씩은 빗나간다. 올림픽공원 조성이 워낙 오래되었기 때문에 나무들이 다 키가 크고 울창하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만난 이름도 생소한 귀룽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크고 수형이 이쁜지, 거기다가 하얗게 꽃으로 뒤덮여 있는 나무가 너무 좋아서 어제 다시 갔더니 꽃이 지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다 ..

living note 2024.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