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300

시골까치

시골까치는 부자다.내 어린 시절에는 감을 겨우 한두 개 남겨주던 게 까치밥인데 이제는 나무를 통째로 준다. 농부는 꽃처럼 바라만 볼 뿐 감을 딸 수가 없다. 후드득 나무를 때려서 따는 대추와는 달리 한 개 한 개를 긴 장대 끝에 매달린 기구를 이용해 돌려가며 따야하는 감따기는 노부부만 사는 시골에는 오히려 근심거리가 되고만다. 농장물로 키운 감이야 일시에 수확을 하지만 밭둑이나 산비탈에 있는 감은 전부 까치들 것이다.까치라도 배불리 먹으면 감은 충분히 제 살을 보시하고 그것으로 만족할지도 모른다. 까치가 먹고 씨나 흙 속에 박아주면 그것으로 감나무는 할 일을 다하는 거다. 그래서 먹히기를 기다린다. 냉장고보다 저장성이 좋은 자연의 공기는 까치의 밥을 매일 달콤하게 한 알씩 내어준다. 싸울 필요도 없이..

living note 2024.11.24

나의 노후대책

노후 대책의 사전적 의미로는, 편안한 노후생활을 위하여 사전에 세우는 계획이나 수단이라고 되어 있다. 노후대책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경제적인 게 1순위로 꼽을 텐데 물론 맞다. 당연하다. 그런 기본적인 거 말고 내가 생각하는 노후대책이란 시간관리와 건강관리다. 경제적으로 빈틈없이 대책을 잘 세워놓았는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거나 건강하지 못하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돈이 많아도 쓸 수도 없고 시간이 남아돌아도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계획을 세워놓지 않으면 아마도 사는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나는 늘 말한다. 살만큼 살고 보니 잘 노는 게 노후대책이라고. 잘 논다는 건 건강하다는 뜻이고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뜻이다. 논다는 것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

living note 2024.11.23

전문가라는 사람들

스마트시대를 살면서 어두운 구석이라곤 없는 너무 밝아진 세상을 살다보니 오히려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정보가 넘쳐나지만 잘못된 정보도 많아서 그걸 고르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은 원하는 정보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학자들의 학설은 왜 대립, 상충하는가?연구를 많이 했다는 학자 내지 전문가들이 내놓은 주장에는 일관성이 없어서 정작 내가 필요한 정보가 여러 개일 경우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모를 때가 있다. 거창하게 철학, 과학, 역사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정보를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고민될 때가 많다.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의 정보 또한 너무 많아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준다. 그런 ..

living note 2024.11.22

처음은 낯설어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요한 어둠 속에 몸을 맡기고 깊은 잠을 자고 난 후 산책을 나갔더니 나무와 바람이 사투를 벌였는지 그 흔적이 길바닥을 덮었고 결국엔 바람이 승리한 겨울의 첫추위를 느꼈다. 바람은 유령 같아서 모습을 감춘 그 힘에 당해내는 것이 없다. 여름엔 고맙기만 하던 바람이 겨울엔 불청객이 되었다. 고마웠던 지난여름을 생각하며 또 한 철 혹한이 오더라도 잘 이겨내야겠지. 첫 만남, 첫추위, 첫 더위, 처음이란 건 무엇이든 낯설고 적응이 어렵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마음가짐에 맛보기 같은 걸 꼭 한번 느끼게 한 다음 본격적은 성격을 보여준다. 첫 만남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기간이 있듯이 본격적으로 닥칠 겨울과의 만남에도 얼마나 매섭게 닥칠지 탐색을 하라는 듯 오늘 처음으로 기온이 영도까..

living note 2024.11.18

우리집 강아지 루비

우리 집에 이쁜 아가가 생기면 육아일기를 잘 쓰고 싶었다. 그러나 헛된 바람을 뒤로하고 어느 날 아기 대신에 강아지를 안겨준 딸이, 엄마를 위해서라나. 엄마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면서 공부도 하고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 해주고 있는 시간이 어느새 십 년이 되었다. 까만색의 강아지를 안고 보니 윤기 나는 어린것이 보석처럼 이쁘다고 이름을 루비로 지어놓고 불러주니 금방 자기 이름인 줄 아는 것도 신기했고, 조그마한 응가를 내놓을 때도 신기했고, 대소변을 잘 가리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아침마다 휴지 한 뭉터기를 다 풀어놓아도 이쁜 짓이라고 좋아했던 루비, 처음으로 산책을 하던 날 무섭다고 주저앉아 있는 강아지를 따라 어른 셋이..

living note 2024.11.17

지금 이순간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고 싶다. 이 고운 순간을 잡고 싶어 절규의 소리가 속에서 울리다가 밖으로 터져 나온다. 그냥 당연한 거라고, 가을은 원래 이래,라고 지나치지 못하고 이 순간에 매달리는 건 다가올 시커먼 겨울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다.가을 풍경이 예쁘게만 보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저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잘 견디어냈기에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조용히 사라져 간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들도 말짱하지 않다. 벌레들의 입자국도 있고 멍도 들었지만 그조차 곱게 물들이며 받아들이는 착한 나무들이다. 어쩌면 나무들은 한 해 살이를 최선을 다해 살아냈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은 그들의 삶에 후회가 없는 것이겠지. 나도 인생의 절기가 가을인데 저만큼 곱게 살아내지 못한 것 같아 후회가 인다.자연은 마지막 순..

living note 2024.11.15

탄천 수변공원

지난여름 너무 뜨거워 그늘이 없는 강변길은 잘 가지 않다가 가을이 되니 햇빛 받으며 걷는 것도 참 좋았다. 우리 집에서 탄천은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다. 탄천 분당구간은 사계절이 아름다운 곳이어서 늘 운동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저마다 운동하기에 여념이 없다. 탄천은 용인 구성에 있는 법화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한강 청담대교 밑으로 흘러드는 약 35.6킬로미터의 하천이다. 지난해는 내가 늘 산책하는 이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해서 물길 따라 한강까지 이틀에 걸쳐서 완주를 했다. 여러 동내를 지나면서 이쪽저쪽을 이어주는 교량이 70개나 되고 지류도 여러 개가 있었다. 그중에는 이름이 잘 알려진 세곡천, 양재천도 탄천의 지류라는 걸 알았다. 이름 모를..

living note 2024.11.14

수원화성의 가을나들이

어떤 계절이 시작되거나 떠나갈 때도 도심 속에 있는 수원화성을 찾는다. 가까워서 느긋하게 성길을 따라 산책하기에 참 좋다. 올해 초 첫눈을 맞으며 걸었던 그 길에 가을을 배웅하러 다시 찾았는데 어쩐 일인지 봄이 시작되는 듯했다. 성곽 아래는 제비꽃, 민들레 등 작은 풀꽃이 피어나고 철쭉도 꽃송이를 달고 있어서 가을 억새와 봄꽃이 상충하는 모호한 시간 속을 걸었다, 나의 인식세계는 나로부터 열린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있기 이 전의 시공간은 나의 인식 밖이기 때문에 지식으로만 알 수 있다. 방대한 역사적 시공간은 존재의 유무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예를 들면 비행기를 탔을 때 너무 넓은 하늘을 날고 있는 너무 빠른 속도를 느낄 수가 없다. 탈 것 중에 가장 빠른 탈것이 마치 제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듯..

living note 2024.11.13

왕들의 정원(동구릉)

조선의 축소판 같은 사후세계 왕들의 정원인 만추의 그림 속으로 낙엽을 밟으며 가을길을 걸어본다. 지난 오월에 처음으로 동구릉을 찾았을 때는 능을 위주로 살펴보면서 걸었다. 동구릉의 상징이라면 역시 태조의 건원릉 능침에 피어 있을 억새를 보는 것이다. 그건 가을에 와야 제격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건원릉의 억새꽃과 정원의 가을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월에는 떼죽과 쪽동백의 하얀 꽃무리가 능원에 향기를 뿌리더니 다시 찾은 가을의 능원은 고운 단풍과 낙엽이 깔린 곳에 발자국이 하얗게 남겨진 길을 걷는데 아름다우면서도 멜랑콜리한 운치가 있어 조용한 정념이 이는 가을길이 너무 좋았다. 신에 대한 불가지론은 철학의 궁극으로 남겨진 논리의 난점이지만 논리를 떠나 누구나 신에 대한 상상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

living note 2024.11.09

통영의 아름다움

부산, 거제, 통영은 같은 바다를 공유하며 땅을 나누어 각각의 다른 모습으로 국토의 아랫부분을 받치고 있는 해양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장식하고 있다. 부산 강서구를 지나가는 통영행은 말로만 듣던 거가대교를 통과하는데 그 아래 저도를 지난다. 부산과 거제를 잇는 대교는 40분 만에 두 도시를 연결한다고 한다. 깊은 해저를 지나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구간 일부를 투명하게 해서 심해를 느껴볼 수 있게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마음속으로 그리던 통영은 무척 아름다운 풍경인데 어디에서 내가 그린 그림을 만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통영시장을 둘러보고 동피랑으로 올라갔는데 날씨가 너무 뜨거워 한여름 같았다.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비랑(벼랑)이라는 뜻이다. 올라가 보니 서피랑은 마을이 아닌 동..

living note 2024.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