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처음은 낯설어

반야화 2024. 11. 18. 14:51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요한 어둠 속에 몸을 맡기고 깊은 잠을 자고 난 후 산책을 나갔더니 나무와 바람이 사투를 벌였는지 그 흔적이 길바닥을 덮었고 결국엔 바람이 승리한 겨울의 첫추위를 느꼈다. 바람은 유령 같아서 모습을 감춘 그 힘에 당해내는 것이 없다. 여름엔 고맙기만 하던 바람이 겨울엔 불청객이 되었다. 고마웠던 지난여름을 생각하며 또 한 철 혹한이 오더라도 잘 이겨내야겠지.

첫 만남, 첫추위, 첫 더위, 처음이란 건 무엇이든 낯설고 적응이 어렵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마음가짐에 맛보기 같은 걸 꼭 한번 느끼게 한 다음 본격적은 성격을 보여준다. 첫 만남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기간이 있듯이 본격적으로 닥칠 겨울과의 만남에도 얼마나 매섭게 닥칠지 탐색을 하라는 듯 오늘 처음으로 기온이 영도까지 내려갔다. 겨울 옷을 입었지만 한겨울 같은 찬바람에 움츠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한결같지가 않아서 뜨거운 여름엔 "겨울이 더 낫다" 하다가 막상 혹한이 오고 떨다 보면  그래도 "여름이 나은 것 같아"라고 말하게 된다. 어제 끼지만 해도 단풍이 고와서 신나게 돌아다녔는데 하룻밤 사이에 달라진 모습이 슬퍼진다. 벚나무는 마지막잎새도 남기지 않은 채 잎을 떨구었고 달려 있는 잎들은 쪼글쪼글하게 말라버려서 너무 볼폼이 없으니 당분간 무슨 재미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올겨울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
바람대로 된다면, 병충해 예방을 위해서 한강물 한 번 정도 얼게 해 주고, 간간히 눈도 내려주고 뭉쳐놓은 때 묻은 눈 뒹굴 때쯤엔 말끔히 씻어줄 비도 내려주고 그 외는 평균적으로 따스한 날씨와 온화한 바람이 겨울이라는 것만 느낄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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