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고 싶다. 이 고운 순간을 잡고 싶어 절규의 소리가 속에서 울리다가 밖으로 터져 나온다. 그냥 당연한 거라고, 가을은 원래 이래,라고 지나치지 못하고 이 순간에 매달리는 건 다가올 시커먼 겨울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다.
가을 풍경이 예쁘게만 보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저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잘 견디어냈기에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조용히 사라져 간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들도 말짱하지 않다. 벌레들의 입자국도 있고 멍도 들었지만 그조차 곱게 물들이며 받아들이는 착한 나무들이다. 어쩌면 나무들은 한 해 살이를 최선을 다해 살아냈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은 그들의 삶에 후회가 없는 것이겠지. 나도 인생의 절기가 가을인데 저만큼 곱게 살아내지 못한 것 같아 후회가 인다.
자연은 마지막 순간까지 멋과 향기를 잃지 않는다. 낙엽은 밣일수록 향기가 나고 소나무는 몸이 잘릴 때 가장 향긋하다. 자연만큼만, 자연 같이만 살았으면 좋겠다. 낙엽귀근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이토록 눈부시게 세상을 밝히며 안녕을 고하는 이 순간을 잡아두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집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창밖을 내다봐도 그림이고, 문밖을 나서도 온통 찬란한 풍경화의 전시장 같다. 간밤에 가을비 내리고 씻겨진 나무들은 더 붉은 윤기를 머금었다. 이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들을 그냥 떠나보내지 못해 밖으로 나갔다. 바람 많은 높은 산에는 이미 단풍이 메마르거나 낙엽이 졌지만 동네의 단풍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멀리 가지 않고 우리 동네만 걸어 다녀도 온통 그림 속이고 나도 그 그림 속 풍경이 된다.
사라져 가는 이 순간들을 그림으로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건 사진이라도 남겨두는 것이다. 바람 불 일도 없고 떨어질 일도 없는 절륜의 미로 남겨두는 거다. 찬바람 한 번 불면 지우개로 지우듯이 없어지고 말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한 아름다움이지 않는가.
가을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걸작, 억새꽃이 만발한 수원화성의 장대와 누각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이 순간도 꼭 남겨두고 싶다. 화려한 단풍에 비해 순수하지만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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