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절이 시작되거나 떠나갈 때도 도심 속에 있는 수원화성을 찾는다. 가까워서 느긋하게 성길을 따라 산책하기에 참 좋다. 올해 초 첫눈을 맞으며 걸었던 그 길에 가을을 배웅하러 다시 찾았는데 어쩐 일인지 봄이 시작되는 듯했다. 성곽 아래는 제비꽃, 민들레 등 작은 풀꽃이 피어나고 철쭉도 꽃송이를 달고 있어서 가을 억새와 봄꽃이 상충하는 모호한 시간 속을 걸었다,
나의 인식세계는 나로부터 열린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있기 이 전의 시공간은 나의 인식 밖이기 때문에 지식으로만 알 수 있다. 방대한 역사적 시공간은 존재의 유무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예를 들면 비행기를 탔을 때 너무 넓은 하늘을 날고 있는 너무 빠른 속도를 느낄 수가 없다. 탈 것 중에 가장 빠른 탈것이 마치 제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듯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뇌가 헤아릴 수 없는 극단적인 것은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하물며 내가 모르는 지나간 시공간이 얼마나 길고 컸는지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역사의 기록일 뿐이다.
역사공원에서 옛 성을 따라 걷다 보면 성체에서 나 이전의 무수한 시간의 흐름과 만나면서 나의 인식 세계에 갇혀 있던 시간의 틀이 완전히 깨어지는 역사와 만난다. 밑돌은 가장 튼튼하고 큰 돌을 놓고 그 위로 크고 작은 자연석을 생김새 그대로 다듬어 모가 나면 틈을 메우는 작은 돌멩이로 채워 넣어 빈틈없는 짜임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공부였다. 더러 허물어진 자리에는 현대의 기계적 공법으로 화강암을 매끈하게 다듬어 수리된 성체를 보노라면 마치 부식되어 가는 산화철처럼 성돌이 마사토 같이 부서져 내리고 있는 게 보인다. 얼마나 더 굳건하게 옛 성체가 버티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지난가을에 그리도 곱던 그 자리의 단풍은 이제 조금씩 물들어가는 중이고 전체적으로는 푸른색이 더 많았다. 앞으로는 거의 고정적이던 사계절 분류의 틀마저 완전히 깨어져버리고 늘 짧아서 아쉬움을 토로하던 가을이 길어지고, 길어서 불편했던 겨울이 짧아질 기세다. 어느 것이 더 좋을지는 모르나 사계절의 절기가 모두 그 다울 때가 좋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과 동화되는 몸짓
성돌의 생김새와 짜임새
효원의 종, 수원시의 드높은 기상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 주요 행사에 타종을 했다고 한다.
가을 타는 여인의 통곡의 벽
잡상들 위에 까치 한 마리
식탁 위에 떨어진 낙엽을 곁들인 우리들의 가을 한 상.
가을여인,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 것도 부족해서 머리에 이고 있는 마치 천경자화백의 모델 같은 모습이다. 눈으로 보고 향기로 느끼는 오감만족을 아는 우리의 친구들.
서장대(화성장대)
여장과 여장의 틈으로 보이는 포로
성내마을
방화수류정과 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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