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압이란 지명의 유래를 알 수 없지만 난 알 것 같다. 다압에 매화가 피면 주변의 모든 것을 다 압도해 버린다는 걸, 봄의 축제에 가장 먼저 막을 올리는 남도로 가서 서막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매화의 만개를 보면 축제를 위한 수많은 먹을거리, 호객하는 유행가의 소음, 들판의 봄풍경 등 심지어 긴 강줄기를 펼치고 있는 섬진강 의 유려한 흐름까지 다 압도해 버려서 오직 매화 하고만 눈을 맞추려는 심상이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을 유발 하게 된 다압은 매화마을이 되기 전부터 어떤 운명적인 지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언젠가 쫓비산을 하산해서 매화마을을 둘러본다는 등산코스에 따라 산행을 한 적이 있는데 하산해서 돌아갈 시간에 쫓겨 제대로 매화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등산은 패스하고 바로 매화마을로 향하는 코스를 선택했는데 선택이 얼마나 잘한 일이었는지, 흠뻑 매향에 젖어보는 날이어서 아직도 그 향기와 매화의 절륜한 아름다움의 여운이 짖게 베어져 있다.
산으로 간 팀과 시간을 맞추려면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팀 중 세 사람만 주차장에서 걸어서 매화마을까지 가기로 하고 우리는 먼저 섬진강으로 내려갔다. 섬진강의 이야기는 분량이 많아서 별도로 기록하기로 한다. 일행은 섬진강에서 올라와 매화마을로 갔더니 향기로 먼저 음미를 하고 마을 안으로 깊이 들어서면 이미 많이 남아있는 영상처럼 마을 언덕을 뒤덮을 만큼의 꽃이 피지는 않았다. 그래도 좋은 것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섬진강 바람맞으며 굴곡진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형태의 미가 된, 옛 선비의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나무몸체의 곡선을 먼저 보란 듯이 꽃을 조금 늦게 피우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나는 달리 보았다.
다압마을 사람들은 모두 예술가의 손을 가졌을까, 어디를 자르고 어디를 키워야 하는지를 알고 다듬어진 선택받은 가지들만 남아 큰 분재 같은 수형이 되도록 멋스럽게 잘 키우고 그 검은 몸매에 진분홍 꽃을 피워 올리는 아름다움을 반만 보고 남겨둔 것은 다음을 기약함이다. 다압의 매화는 특별한 마을의 특별한 꽃이었다.
오늘 하루 세상의 혼란함을 다 잊고 오직 향기와 화사한 꽃마을에만 온마음을 빼앗겨 마치 아름다움만 가득하다는 극락정토에 다녀온 듯하다. 꽃만큼 선한 게 또 있을까? 꽃을 들여다보면 보는 마음까지 선해져서 악을 다 흡수해 버릴 것 같으니 사람은 늘 꽃을 가까이해야 된다. 매일이 오늘만 같은 날이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심미감으로 충족된 하루는 한치도 연장이 허락되지 않은 채 하루는 속절없이 어둠 속으로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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