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빛의 이름

반야화 2025. 3. 10. 13:17

온기, 냉기, 열기.
계절에 따라 빛을 대하는 마음이 다르다. 겨울 남향에서 깊이 들어오는 해는 온기를 주고, 여름 서향에서 깊이 들어오는 빛은 열기를 준다. 겨우내 방 안으로 깊이 들어오던 따스하던 빛이 요즘은 자꾸 밀려나면서 아침마다 좀 천천히 나가라고 붙잡고 싶은데 요즘은 방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한 뼘정도 남겨주고 밖으로 소리 없이 나가는 중이다. 아침마다 냉기를 데워주던 고맙던 빛이 한 뼘씩이나 나가는 걸 보고 있으면 그만큼 시간이 달아나는 것 같다. 아직은 빛이 사라지면 실내는 냉기가 돈다. 연료보다 더 따스했던  빛이
었는데.....

내 방에서 밀려가는 빛의 온기는 아주 밉지는 않게 내 화단에 있는 꽃에 듬뿍 양식을 만들어준다. 겨울 동안에 온도계를 보면서 꽃들을 들였다 냈다 하면서 관리를 했더니 꽃들이 마구 피어난다. 지난해 겨울에는 베란다에 그냥 두었더니 죽은 것도 아닌 것이, 산 것도 아니었다. 봄이 되어도 뿌리가 얼었는지 크지도 않고 꽃도 피지 않고 녹색이 아닌 연두색 잎이 몇 개 나더니 그게 끝이었다. 그래서 지난가을에 꽃을 새로 사서 심고 아침저녁으로 온도를 체크하면서 살폈더니 내 작은 수고로움에 크게 보답을 하고 있는 꽃들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다.

초겨울 냉기를 밀어내고 방을 따스하게 데워주던 온기가 완전히 나가버리면 바깥이 방만큼이나 따스한 봄이 무르익게 되고, 난 그 온기 따라 밖으로 나가는 날이 많아져 나비처럼 꽃 찾아다닐 것 같다. 가장 보고 싶은 꽃은 솜털 보송보송한 노루귀다. 그 여린 생명이 언 땅 속에서 살아남아 꽃까지 피어 올리는 걸 보면 너무 감동적이다. 나의 사이버집인 블로그도 계절이 해마다 차례로 되풀이되면서 사계로 장식된다. 그리고 그것에 찬사로 돌려주는 기록의 취미가 나는 너무 행복하다. 이제 곧 내 마음의 여백을 채워줄 계절의 아름다움을 위해 마음 한구석을 비워놓았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꽃을 보여줄거나, 속에서부터 꽃을 품고 자라던 꽃대가 모체만큼 크고도 아직 봉우리가 열리지 않고 있다. 이렇게 어렵게 꽃이 피는데 지는 것은 하루만이다. 피는 날 보고 나면 이튿날 지고 만다. 꽃 보기도 힘들고 실컷 보기는 더욱 힘든 하난의 비애가 너무 야속하다. 이만큼 되기까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2025. 3.23일, 추가하는 글.

드디어 학난이 꽃을 피웠다.
이 자그마한 꽃 두 송이를 피우기 위해 꽃대가 올라오고 백일가량 걸린 것 같다. 매일 들여다봤는데 어제 기온이 오르고 오늘 활짝 피었다. 보라색꽃을 본 적이 있어서 보라색이 필 줄 알았더니 흰색에 보라색 속잎이네. 내가 본 것과 반대다. 학난은 겨우 하루정도 생생하다가 아마 내일이면 시들어 떨어지지 싶다.
기다림의 인내를 주는 학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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