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봄무대의 장막을 연 복수초(물향기수목원)

반야화 2025. 2. 28. 13:29

검은 암막커튼 같은 겨울이 밀려나면서 화사한 꽃무늬의 커튼이 열리더니 지난해의 봄을 다시 불러 세우는 커튼콜이 열였다. 가장 먼저 무대인사를 한 복수초가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 듯 노랗게 방긋 웃고 있다.

매섭던 찬바람의 성질이 유순해지더니 멀리 남쪽으로 봄을 데리러 길을 떠났는지 날이 따스하다. 얼마나 이쁜 봄처녀를 데려올지 기다리는 시간의 조급한 마음을 달래주며 언 땅에 금을 내더니 그 틈을 비집고 복수초가 먼저 얼굴을 드러냈다. 오늘 같은 날씨가 일주일만 이어지면 뒤이어 땅에서는 노루귀, 봄까치, 봄맞이 현호색 얼레지 등 수많은 봄꽃들이 존재를 드러내게 될거다.머잖아 수많은 봄꽃들을 맞이할 때는 이쁘다고만 할게  아니라 경건한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 같다는 마음가짐이 된다.고생 많았지?살아 있어서, 다시 만나서 고마워하면서.

봄이니까 꽃피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던 것이 아니라 엄동설한 무사히 넘기고 곱게 다시 온 꽃을  예사로 보지 말고 위대한 신비로 맞아야 된다. 검기만 하던 나무가 살아 있을 것 같지도 않던 엄동설한을 지나고 메마른 몸속에 저리도 이쁜 꽃을 품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위대한 신비밖에 어떤 말로도 칭송할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

땅속에서 먼저 야생화가 올라오고 뒤이어 나무에 피는 꽃들의 차례다. 노란 물방울을 매단 것 같은 산수유, 목련, 생강나무, 벚꽃, 진달래, 개나리 등이 꽃피우는데, 세상에 이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잔치가 또 있을까? 조용하고 소음이 차단된 산속에서 검은 나무에 귀를 데고 있으면 이제 막 나무들은 모세혈관에서부터 뿌리를 타고 오르는 피 같은 수액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싱그러운 기운을 느끼게 될 것 같은데 설레는 기다림은 성급한 내마음에 돌덩이 하나를 얹으며 누르라고  한다.

한겨울보다도 더 추웠던 2월이 다 가고 어제는 모처럼 시작되는 따스한 봄기운에 복수초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오산에 있는 물향기수목원으로 갔다. 복수초를 만나야 봄을 만날 것 같은 마음에 찾아갔더니 갓 나온 노란 얼굴이  얼마나 윤기가 나는지 형광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고운 꽃을 보면서 움츠렸던 마음까지 활짝 열고 선잠 깬 나무도 보면서 수목원 산책길을 걸으면서 앞으로 만날 수많은 꽃들의 이름표를 미리 익혀 두는 것도 무척 좋았다.




수목원 온실에 피어 있는 극락조화인데 흰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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