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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숲과 노리매공원

제주는 숲 속의 도시다. 제주시만 벗어나면 특별하게 이름 붙여지지 않은 광활한 들판과 오름들이 다 숲이지만 또한 보호하고 가꾸어진 이름이 붙여진 숲도 많은데 그중에서 우선 사려니 숲을 먼저 갔다. 어떤 곳을 찾아가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지만 주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들어가는 수도 있다. 그래도 누구의 도움 없이 잘 찾아다닐 수 있는 것도 퇴화되지 않는 정신인 것 같아 좋은 점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내려 눈밭에 사람 발자국과 노루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정문이 나왔다. 휴식년제를 제외하고 총 걸어야 할 거리는 10킬로, 시작하는데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섞여있지만 물찻오름을 돌아서면 빽빽하고 쭉쭉 뻗은 삼나무 숲이 나타나는데 점점 기온이 오르고 눈이 녹은 흙..

제주의 사계 2013.02.27

이중섭미술관

오늘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이중섭 생가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있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다행히 미술관은 실내이기 때문에 둘러보는데 지장이 없어 편히 감상하고 생가에 들어갔더니 오래된 초가 한 칸이 이중섭의 생가인 줄 알았더니 기막히게도 초라한 초가 한 모퉁이 1평도 안되어 보이는 작은방 한 칸에 세 들어 살면서 네 식구가 생활을 했다고 해서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눈물이 나서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에 잠겼다. 생전에 그림의 작품성을 지금만큼만 평가를 받았더라면 조금 더 편히 살 수 있었지 않을까 싶었다. 유명 작가들은 거의 사후에 빛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후에 아무리 천재적인 화가라고 평가를 받은들 무슨소용이 있을까! 가난 때문에 종이도 살 수 없어 담배갑이며 껌딱지에다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인지..

제주의 사계 2013.02.19

인자한 소나무

따스한 온기가 있다면 언 땅도 언, 마음도 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네요. 그동안 맨흙을 볼 수 없을만큼 오랫동안 눈에 덮여있던 산에 며칠간의 온기로 다 녹았습니다.움추려 있기만 했던 사람까지 밖으로 불러내는 포근한 덤같은 날을 모른 채 할 수 없어 야산 공원에 올랐더니 언 땅이 녹아 마치 얼개미로 친 흙에 갈잎을 버무려 만들어 놓은 새길처럼 아주 부드러워 무거운 발걸음을 다 흡수해주는 것 같았어요. 한참 오르다 보면 짤막한 깔닥고개가 나오고 구간이 끝나는 딱 그 지점에 인자한 소나무 한 그루가 빈약한 등허리를 내주며 쉬었다 가라는 듯 힘겹게 서 있습니다. 잘 생겨서 쓰다듬고 가는 것도 아니고 아름드리여서 기대어 보는 것도 아닌 빈약한 소나무가 적재적소에 굽은 허리를 내어 주지만 함부로 걸터앉기엔 너무 인..

등산 2013.01.31

떠나온 무대

모든 게 죽고 빛만 살아 있는 밤 그 깜깜한 속에 또 하나 살아 있는 건 북한산. 거긴 내 중년의 무대였고 내 건강의 무대였다. 눈 감고도 오르던 북한산을 다녀오는데 10시간이 걸렸다. 못내 아쉬움에 돌아 돌아보며 떠나온 무대, 신년 해맞이를 시작으로 한 해를 열고 나면 그 생동감 넘치는 무대에 사계절이 연출되고 언제나 난 주인공이었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 유명한 말은 산과 물이 둘이 아니며 자타불이라는 뜻인데 그 속에 나도 추가되어 산과 나도 하나였던 "山我불이"의 시간들 많은 기록으로 남겨진 북한산, 그 산 때문에 그곳에 살았던 진관동 멀리 있어도 언제나 그리움이 있으면 달려가 그 산에 안기리라.

등산 2013.01.17

나무 실타레

계월의 대동강상 大同江上送情人 대동강상 송정인 垂柳千絲不繫人수류천사 불계인 含淚眼看含淚眼함루안간 함루안 斷腸人對斷腸人단장인데 단장인 대동강 위에서 정든님을 보내는데 드리워진 버들가지 천가닥도 가는님을 잡지 못하네 눈물 머금은 눈이 눈물 머금은 눈을 바라보고 애끓는 사람 앞에 애끊는 사람 서있네 流淚眼看流淚眼류루안간 류루안 斷腸人對斷腸人단장인대 단장인 曾從卷裡尋常見증종권리 심상견 今日那知到妾身금일나지 도첩신 눈물이 흐르는 눈이 눈물흐르는 눈을 바라보며 애끊는 사람 앞에 애끊는 사람 서있네 일찍이 책속에서 예사로이 보았는데 어찌 알았으리 오늘 내가 그사람 될줄이야.......

living note 2013.01.11

제주 카멜리아 힐

카멜리아 힐, 박수기정, 신라호텔, 천지연 폭포 제주에는 겨울 한편에 봄도 있는 것 같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쪽에 위치한 서귀포는 완전히 다른 날씨여서 제주 쪽에 비가 와도 서귀포는 맑을 때가 많다고 한다. 제주에 반해서 제주시민이 된 딸이 구석구석 알려지지 않는 부분까지 찾아다니면서 즐기고 있는데, 그 덕에 엄마에게 답사한 곳 중에서 좋았던 곳을 앞으로 다 보여준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참 즐겁다. 이날도 출발하기 전부터 비가 오는데 서귀포는 괜찮을 거라며 집을 나섰더니 쭉 뻗은 도로 양쪽에는 아직도 푸른 가로수와 억새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가운데 먼저 카멜리아 힐로 갔다. 이곳은 육만 평의 대지에 희귀 동백 500여 종 6000그루로 조성된 동양 최대의 동백 정원이라고 한다. 종류에 따라 이미 져버..

제주의 사계 2012.12.12

한라산 영실코스

너무 벅찬 어떤 것을 혼자 감당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입니다. 나쁜 일일 때는 당연하지만 좋은 일일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너무 좋은 것을 보고도 그 감동을 누구와 함께 공감하면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환호가 아닌 혼자 안으로 채워 넣는 억누르기 힘든 마음도 벅차다는 걸 알았습니다. 작년 겨울에 한라산 성판악코스를 가족과 함께 가서 거대한 그릇 같은 백록담에 소복이 쌓인 설경을 봤을 때는 온 가족이 함께 감동을 나눌 수 있어서인지 벅차다기보다는 순간순간 행복했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12월 8일. 딸과 함께 한라산 영실코스를 오르려다가 눈보라가 심해서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떠나면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서울행을 늦추면서 월요일에 혼자서 재 시도를 했는데 날씨도 좋고 다행히 눈은 그친 ..

제주의 사계 2012.12.11

어긋남의 조화

어느 날 보도블록 위를 걷다가 문득........ 세상은 벽돌 쌓기처럼 되어야 한다. 한 줄만 보면 바르지만 다음 한 줄은 바른 가운데 다른 줄과 어긋나고 그 어긋남이 전체를 더 잘 어울리고 더 단단하고 더 조화롭게 하는 어긋남의 조화가 혼탁한 세상을 굳게 다지는 발판이 되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개개의 벽돌이 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언제부턴가 양극화라는 문제가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풀어낼 수 없는 사화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럴 때 양극화가 다른 어떤 조화를 이룰 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훌륭한 한 사람, 그가 누구일까? 세상을 줄탁동시의 경지를 만들어 마침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그런 사람. 누가 그 문제를 벽돌 쌓기처럼 우리 사회를 단단하게 다져줄..

living note 2012.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