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사계

한라산 철쭉

반야화 2013. 6. 7. 21:45

한라산 영실코스에서 본 철쭉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매시간 정각에 있는 1100 도로행 버스를 타고 9시에 출발해서 차로 한 시간 가량 소요되는 거리인 영실에서 올라가 어리목으로 하산하는데 윗세오름 구간 전체가 철쭉으로 덮여 있었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 지난겨울부터 마음먹고 6개월을 기다렸다가 드디어 6월 5일, 이번에 5번째 가는 한라산이다. 이번 한라산행은 친구와 들이서 아주 느리게 가기로 하고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보고 즐기는 그렇게 여유로운 산행은 처음인 것 같다. 느림의 미학을 마음껏 누린 셈이다. 겨울 설경이 너무 좋았지만 백록담 남벽에서부터 윗세오름 전체가 꽃밭이 된 그 드넓은 평원이 연분홍으로 물들었으니 그걸 보는 내 마음의 색은 어떡했겠는가!

 

산에 오르기도 전에 짙은 초록에 덮인 한라산 풍경은 온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겨울 한라산만 보다가 이번에 짙은 녹음의 원경은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새소리는 또 얼마나 좋던지 잠깐씩 운무에 쌓이고 드러나는 반복적인 모습은 오백 나한봉과 병풍바위 등 절경을 더욱 돋보이는 효과를 주었으며 우리 또한 그 그림 속의 구성요소가 되어 완전 자연과 동화되는 일체감을 누렸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니 아래쪽에는 철쭉이 져버린 흔적이 있어 실망하는 게 아닐까 속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지만 혹시나 실망할까 봐 하산하는 이들에게 꽃소식을 물어볼 수가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꽃이 너무 좋다고 해서 안심하고 더욱 힘을 내어 올랐더니 멀리서도 보이는 백록담 아래 연분홍 물결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겨울에 온 산이 하얀 눈밭이었다가 지금 이 꽃밭이 진정 그때 그 자리가 맞는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화려해서 중년의 여유와 행복을 거기에 다 풀어놓고 싶었다.

 

한라산 하면 바다의 운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인데 너무도 아쉽게 그 장면을 친구에게 보여줄 수 없어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한계를 "명산은 한꺼번에 다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꽃이 아름다워 그 모든 아쉬움을 덮을 수 있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한라산의 장관을 보시라.

 

구상나무

 

                                                    

 

 

 

 

 

 

 

 

 

 

 

 

 

 

 

 

 

 

 

 

 

 한라산의 대밭이 보리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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