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숲 속의 도시다. 제주시만 벗어나면 특별하게 이름 붙여지지 않은 광활한 들판과 오름들이 다 숲이지만 또한 보호하고 가꾸어진 이름이 붙여진 숲도 많은데 그중에서 우선 사려니 숲을 먼저 갔다. 어떤 곳을 찾아가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지만 주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들어가는 수도 있다. 그래도 누구의 도움 없이 잘 찾아다닐 수 있는 것도 퇴화되지 않는 정신인 것 같아 좋은 점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내려 눈밭에 사람 발자국과 노루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정문이 나왔다. 휴식년제를 제외하고 총 걸어야 할 거리는 10킬로, 시작하는데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섞여있지만 물찻오름을 돌아서면 빽빽하고 쭉쭉 뻗은 삼나무 숲이 나타나는데 점점 기온이 오르고 눈이 녹은 흙길을 걷는 동안 질 좋은 공기와 숲의 향은 채워도 채워도 배부르지 않은 정신적 만찬이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더러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어떤 이는 여행 때문에 혼기를 놓친 48세의 어느 교사와 4살짜리 아이를 여기저기 부탁하고 뛰쳐나왔다는 역시 교사 그리고 나와 함께 걷는 사람도 교사 출신 나 역시 교사 출신의 남편 어쩌다 보니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서 낯설지도 않게 참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하면서 끝나는 지점까지 함께 걸었다. 여행은 그런 것인가? 만나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삶은 틀리지만 잠시 같은 길을 걷는 마음과 그 속에서의 느낌은 같으니까 금방 친구도 될 수 있는 것 같다.
노리매 공원, 여기는 입장료가 비싼 매화공원이다. 1인당 9000원, 축제 기간에 제대로 절정기를 맞추는 축제는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제 꽃망울이 터질 듯 부풀어 있을 뿐 만개한 꽃밭이 아니어서 약간 실망했다. 그러나 바람이 살랑일 때마다 매화향이 들숨으로 빨려 들어오는 기분 좋은 매향이 있어 그나마 산책하는 재미가 있고 별 떨기 같은 수선화도 풋풋한 향을 보태면서 귀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수선화를 보니까 추사 선생이 생각났다. `아버지 따라 연경에 갔던 추사는 선물로 받은 수선화를 다산 선생께 선물로 보냈는데, 다산선생의 어린 손자는 처음 보는지라 그 싹을 부추 잎 같다고 했고 어린 여종은 마늘 싹이 일찍 피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잎이 그렇게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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