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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숲길

요즘은 산행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덥지 않아서, 바람이 있어서, 아직은 진달래와 산벚꽃이 있어서 좋고 점점 유채색으로 변해가고 푸른 물감이 번져가는 듯해서 산의 원경이 참 이쁘다. 매일 오르는 길인데 며칠 전에 보니까 새로운 이정표가 생겨서 어디일까 궁금하던 차에 오늘은 어디가 되든 한 번 가보자며 노란 리본을 따라갔더니 가도 가도 목표로 삼았던 할미산성이 나오지 않고 물어볼 사람도 만날 수 없고 그렇게 몇 시간째 걷다가 드디어 혼자 가는 여자를 만나서 이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용인시에서 석성산~할미산성~법화산 구간의 단절된 숲길을 연결하는 ‘용인 숲길’ 조성을 완료했다는 곳, 할미산 정상에 산성의 부서진 잔해가 보이고 현재 산성을 복원하는 중이었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

living note 2013.04.27

나의 산책코스

내 일상 중에서 가장 단맛이 진하게 나는 시간이다. 길은 하나지만 비라도 오는 날은 비슷하면서도 묘한 걷는 맛이 틀리는 길이다. 봄이 느린 걸음으로 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남녘에서 만났던 봄이 내 집까지 도달하는 동안 지날 때마다 그릇그릇에 소담하게 꽃을 담아두고 떠나가는 곱고도 더딘 그 걸음을 이제는 그만 멈추라 하고 싶다. 그래도 떠난다면 내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으랴만 약속이나 하고 가시라. 봄이 꽃을 몰고 올 때 나 또한 꽃다움에 있어달라고, 마음만이라도. 진달래는 떨어져 눕고 푸석푸석한 땅에 봄비가 내리는 날은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어린잎들이 힘껏 젖을 빨아올 리 듯 입술에 방울방울 맑은 젖을 흘리고 있네. 이렇듯 너무도 사랑스러운 어린잎이 쑥쑥 커가는 아침, 풋풋한 솔향 가득한 산..

living note 2013.04.25

칼랑코에한테 빠지는 이유

아! 요것이 칼랑코에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꽃입니다. 왜냐하면 몇 년 전에 색깔별로 몇 포기 사서 가꾸었더니 그다음해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꽃 지고 난 뒤 시들은 꽃대를 뽑고 그 중에 싱싱한 꽃대를 잘라서 삽목을 대충 했는데 이상한 건 삽목 하기 전의 꽃 하고 같은 색이 아니고 뒤섞여서 핍니다. 작년과 올해 또 다른색으로 섞여서 핍니다. 그 원인을 찾아봐도 정답을 모르겠어요. 콩 심은 데 콩 나는 게 아니라 팥이 나는 것처럼요. 해마다 색이 변하는 게 다음 해의 색상이 기대되는 야릇한 꽃입니다. 꽃도 너무 이쁘고 키우기 쉽고 오랫동안 지지도 않고 집에서 키우기에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정말 빠져들고 그 요술에 반했습니다. 밤에 찍은 것인데 색도 예쁘고 전 요즘 밤에 꽃 사진 찍는 게 너무 재미있..

카테고리 없음 2013.03.19

애상

구구 소환도 구구 소환도의 마지막 매화가 피는 날 봄의 입김이 무엇이길래 언 땅 시름에 생명이 솟구치는지 나무의 모성은 무엇이길래 혹한에도 꽃을 품고 있었는지 나목의 우듬지에 봄이 올라오면 줄기마다 가지마다 빗장이 열리고 철없는 꽃잎 입술을 내미네 봄이 왔는데 매화도 왔는데 나의 바다는 잔잔하다가 파도가 일다가 해일같은 그리움이 덮쳐오면 봄은 겨울 되고 매화도 낙화되어 그 꽃잎 잔잔히 떠돌다가 파도를 타다가 해일에 쓸려 먼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그리움을 삭혔지만 먼먼 곳으로 떠돌던 꽃잎 붉은 멍으로 파도에 밀려 내게로 다시 오네.

living note 2013.03.13

월영교

월영교, 그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야경이 연상되는 다리다. 안동댐 들머리에서 바라보면 긴 곡선으로 중앙에 날아갈 듯 월영정이 있고 그 아래로 깊고 넓은 바닷빛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안동댐 보조댐이다. 이른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올라 월영정을 감돌며 몽환적인 풍경이 되고 달밤이면 선명한 달그림자가 비쳐서 잔잔하게 출렁이며 시 한 수 절로 토해질 것 같은 애잔함마저 들게 하는 운치를 간직한 다리다. 월영정까지는 직선으로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 뒤로도 시작점만큼이나 더 굽이치며 이어져 있었다. 서울에서 한강을 도보로 걷고싶다는 생각으로 어느 날 잠수교를 걸었지만 이만큼 멋스럽지는 못했던 것 같다. 월영교도 반포대교같은 분수도 있고 조명도 있다, 사람만 다니는 다리가 어디 흔한가? 다리 건너에는 ..

living note 2013.03.05

수월봉과 추사기념관

멀리 한라산의 원경을 한눈에 바라보면서 올레 12코스에 있는 수월봉에 가는 길이다. 제주의 서쪽 바다를 가장 넓게 품고 있는 수월봉은 낙조 광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차귀도와 풀력발전소가 있고 해안절벽이 2킬로 까지 이어지고 있는 수월봉에 올라 그 큰 바다를 이 작은 두 눈에 다 넣을 수 있는 높이에서 바라보는 바다를 보면 우선 "저 깊고 넓은 바다가 어떻게 지구 표면에 붙어 있을까 하는 무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절집 일주문에 주련으로 쓰여있는 "입차 문래 막 존 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 이 문으로 들어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라는 뜻처럼 생각으로 지식으로 아는 척할 수가 없는 선계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그런 풍경에 매료되었는지 심하게 미끄러져 더 이상 해안 도로를 걷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제주의 사계 2013.03.01

사려니숲과 노리매공원

제주는 숲 속의 도시다. 제주시만 벗어나면 특별하게 이름 붙여지지 않은 광활한 들판과 오름들이 다 숲이지만 또한 보호하고 가꾸어진 이름이 붙여진 숲도 많은데 그중에서 우선 사려니 숲을 먼저 갔다. 어떤 곳을 찾아가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지만 주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들어가는 수도 있다. 그래도 누구의 도움 없이 잘 찾아다닐 수 있는 것도 퇴화되지 않는 정신인 것 같아 좋은 점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내려 눈밭에 사람 발자국과 노루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정문이 나왔다. 휴식년제를 제외하고 총 걸어야 할 거리는 10킬로, 시작하는데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섞여있지만 물찻오름을 돌아서면 빽빽하고 쭉쭉 뻗은 삼나무 숲이 나타나는데 점점 기온이 오르고 눈이 녹은 흙..

제주의 사계 2013.02.27

이중섭미술관

오늘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이중섭 생가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있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다행히 미술관은 실내이기 때문에 둘러보는데 지장이 없어 편히 감상하고 생가에 들어갔더니 오래된 초가 한 칸이 이중섭의 생가인 줄 알았더니 기막히게도 초라한 초가 한 모퉁이 1평도 안되어 보이는 작은방 한 칸에 세 들어 살면서 네 식구가 생활을 했다고 해서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눈물이 나서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에 잠겼다. 생전에 그림의 작품성을 지금만큼만 평가를 받았더라면 조금 더 편히 살 수 있었지 않을까 싶었다. 유명 작가들은 거의 사후에 빛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후에 아무리 천재적인 화가라고 평가를 받은들 무슨소용이 있을까! 가난 때문에 종이도 살 수 없어 담배갑이며 껌딱지에다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인지..

제주의 사계 2013.02.19

인자한 소나무

따스한 온기가 있다면 언 땅도 언, 마음도 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네요. 그동안 맨흙을 볼 수 없을만큼 오랫동안 눈에 덮여있던 산에 며칠간의 온기로 다 녹았습니다.움추려 있기만 했던 사람까지 밖으로 불러내는 포근한 덤같은 날을 모른 채 할 수 없어 야산 공원에 올랐더니 언 땅이 녹아 마치 얼개미로 친 흙에 갈잎을 버무려 만들어 놓은 새길처럼 아주 부드러워 무거운 발걸음을 다 흡수해주는 것 같았어요. 한참 오르다 보면 짤막한 깔닥고개가 나오고 구간이 끝나는 딱 그 지점에 인자한 소나무 한 그루가 빈약한 등허리를 내주며 쉬었다 가라는 듯 힘겹게 서 있습니다. 잘 생겨서 쓰다듬고 가는 것도 아니고 아름드리여서 기대어 보는 것도 아닌 빈약한 소나무가 적재적소에 굽은 허리를 내어 주지만 함부로 걸터앉기엔 너무 인..

등산 201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