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나의 하루는 산책으로 시작한다. 집 밖을 나서면 아파트 사이에 녹지공간을 살려서 산책코스를 남겨 둔 도시설계가 맘에 들고 또한 바로 야산으로 이어지도록 좁다란 산책로를 남겨놓은 것에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겨울이면 새벽 같은 시간, 6시가 되면 집을 나서는데 처음엔 신선하고 서늘한 공기가 너무 좋구나 하고 한참을 오르다 보면 점점 몸 속의 피가 데워지고 정상에 도달하면 급기야 피는 끊어서 김이 몸밖으로 배출되면 금방 수증기로 변해 방울방울 맺히는 그것이 땀인 것 같다.
산책을 할 때는 발의 감각을 최대한 이용해서 한 걸음 한 걸음에 한 생각 한 생각을 실어서 걷다 보면 잡념은 사라지고 대신 평소에는 생각 못 했던 깊은 사고와 사물을 관찰하게 된다. 새들이 우는 소리를 듣다 보면 한 마리가 울면 다른 쪽에서 일정한 주기로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듯이 소리를 주고받는다. 까마귀도 까악까악만 하는 게 아니고 이상한 옹알이 같은 소리를 내고 어떤 새는 계속 나를 따라오면서 울고 있는 걸 보면 나를 아는 새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바람까지 달리 느껴진다.
바람은 유령같다. 형체도 없으면서 때로는 힘을 과시하고 때로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갓 태어난 유령은 나의 맨살은 건들지도 않고 그냥 지나치면서 싸라나무 잎이나 아카시아 잎같이 여린 잎들을 만지면서 팔랑팔랑 장난스레 놀기도 하고, 그러나 늙은 유령은 화가 나면 바다를 뒤엎기도 하고 형체가 큰 나무들과 싸우다가 기어코 부러뜨려 이기고 만다. 이제 곧 그 유령의 힘이 다가오는 계절이 되었다.
며칠 전에 강풍이 불더니 산에는 나무의 잔가지들이 많이 꺾인 채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나무는 버릴 것 하나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주기만 한다.동식물 같은 경우는 마지막엔 부패를 하고 악취를 풍기지만 나무는 죽을 때 더 향기를 풍긴다.소나무를 톱으로 잘랐을 때나 숲의 가지를 칠 때나 오늘처럼 부러져 누운 가지에서도 너무도 상큼하고 기분 좋은 향기를 뿜는다. 나무는 향기롭게 살다 간다.
올라갈 때는 바람이 나를 외면하는 것 같더니 내려올 때는 언제 따라왔는지 어느새 내 등 뒤에서 밀어주며 함께 걷는다.
까치수영
좀작살나무 꽃
물레나물
자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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