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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는 이렇게

북한산 삼천사 계곡어느새 여름의 한가운데인 삼복더위에 들어섰다. 아침엔 처음으로 매미소리도 들었고 장마도 왔고 여름에 올 손님들은 다 모인 것 같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을 즐기게 되는 휴가철이구나. 나에겐 별 의미가 없지만 괜히 마음이 들뜬다. 피서라면 오늘도 가장 더웠다는 열기를 산속 계곡에서 한기를 느낄 정도로 잠겨 있었으니 남 부러울 게 없었다. 자연 속을 관통하는 대동맥의 흰 피 같은 우렁찬 계곡의 물줄기를 양 옆에 끼고 대청마루 같은 반석에 누워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을 쳐다보며 세상 잡음 다 쓸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마치 이 몸도 자연의 한 조각 세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놓고 즐거워하기에는 수해를 입어 힘든 처지에 있을 다른 사람들 생각이 나서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등산 2009.07.16

기다려주자

빨리 어떤 결단을 내야 하는 국민성이 나에게도 다분히 보인다. 그런데 작은 꽃 한 송이를 보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배운다 모종이 아닌 꽃씨를 뿌려 꽃 피워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자고 나면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화단으로 갔는데 어느날 한낮 그 무성하던 화초 잎에 구엉이 뻥뻥 뚫려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새파란 벌레 한 마리가 그 짖을 하고 있길래 빨리 없애야 한다는생각으로 옆에 있던 바퀴벌레 약을 뿌려 버렸다, 벌레 한 마리 손으로 잡지 못해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후, 벌레는 죽었는지 보이지 않고 한련화의 남은 잎들이 누렇게 말라버렸다. 꽃에게 너무 미안해서 사과를 하고 자책하면 지내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털이 다 뽑힌 싸닭 움 닭 같던 줄기에서 ..

living note 2009.07.14

폭우 속으로 산책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졌다 젖어도 상관없는 가장 편한 차림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는데역시 나다니는 사람 없고 자연만이 피하는 법 없이 굵은 빗방울에 아파 보였다. 동네 실계천에는 마치 큰 강처럼 흙물로 가득 찼고 길 건너 창릉천도 무섭도록 흙탕물로 수초들을 다 덮고도 뭔가를 더 쓸어갈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동네 생태연못에는 왜가리 한 쌍이 날아와 흙탕물을 비행을 하다가 먹이를 잡을 수 없어선지 물가를 서성이고 있었는데 늘 밤에만 산책을 하다 보니 오늘 처음 보는 한쌍이 너무 신기하여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날아갈 때까지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밤에 다니던 길을 다 돌고 집에 들어오니 벌써 서쪽하늘에는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눈부시게 하루를 마감하는 광채를 내고..

living note 2009.07.09

떨어져서 피는 꽃

여름에는 밤이 참 좋죠. 낮에는 차만 보이던 동네가 밤이 되니 온 가족이 강아지까지 다 밖으로 나옵니다. 공기는 또 얼마나 좋은지 풀벌레와 개구리 맹꽁이까지 합창으로 한여름밤의 꿈같은 향연을 매일 밤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달까지 밝아서 조명까지 비추이는 무대는 더욱 빛나는 밤입니다. 합창이 잦아들고 강가로 갔더니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이름 모를 꽃이 떨어져 잔디 위에서 다시 피는 것 같이 아름답게 보였어요. 어쩌면 떨어진 모습이 이렇게 이쁠까요? 밤은 깊어 가는데 이쁜 꽃과 밝은 달을 두고 들어 올 수가 없어 서성이다 떨어진 꽃을 주워서 작은 수반 꽃잎을 띄워두고 보려고 안고 왔습니다. 며칠은 더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식탁에는 산에서 찍은 사진을 유리 밑에 깔았더니좀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저의 작..

living note 2009.07.08

엄마는 휴가 중

30년 만에 찾아온 휴가를 즐기려 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보낼 방법도 없지만, 이것이 때로는 빨간 띠를 두르지 않는 파업 같기도 하고 자유가 지나쳐 방종 같기도 해서 어떤 때는 끼니때가 되어 솥뚜껑을 열면 밥이 없거나 국솥에 국이 없을 때도 있다. 아니면 휴업상태 같기도 해서 아침이 되어도 부엌으로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 그냥 음악만 듣고 있기도 하고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방 안에서 잔잔한 선률이 마음을 실어 일몰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먹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일상이 요즘은 먹는 건 별게 아닌냥 내 맘대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날짜도 요일도 알 필요가 없다 딱히 일정에 따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딸들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출가, 가출? 을 해 버리고 나니 마치 30년 만에 얻은..

living note 2009.06.25

오월 따라 님은 가고

2009.5.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노 대통령님의 장례식이 있었다(5.29). 장례식 애도기간에 산행을 할 수가 없어 산행을 미루다가 오늘 딸과 함께 북한산에 갔다. 마음속에는 세상의 모든 꽃들이 져버린 듯한 마음인데 산 입구에 들어서니 너무도 고운 해당화가 산 입구에 홀로 피어 있다. 이웃한 찔레꽃과 해당화가 다투어 가며 상큼한 향을 뿌리고 있는데 해당화 홑꽃잎이 노란 꽃술까지 드래내며 감추고 있는 속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다 보여주면서 순수하고 상큼한 향이 아픈 마음에 깊게 베어 온다. 한 주간 소중한 님을 보내 드리고 아직도 눈이 부어 있는데 하필이면 해당화는 왜 그리 곱고 향기롭던지, 산자들은 오월을 부여잡고 가지 말라고 푸르름에 젖어 있는데 이 아름다운 계절에 그분께서는 오월을 거두어 슬..

등산 2009.05.30

산사의 야경 (초파일)

작년에는 도심에서도 가장 혼잡하고 화려한 봉은사에서 야경을 찍어 봤지만 이번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큰딸이 절에 가보자고 해서 당일보다는 전야가 좋겠다 싶어 집 근처 북한산 삼천사로 향했다.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지니는 게 버릇이 돼서 챙겨 들고 갔는데 잊고 갔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가로등조차 없는 적막한 산길을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 삼천사에 도착하니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고 그 가운데 경내를 밝히고 있는 연등이 전에 볼 수 없었던 스펙터클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뒷 배경은 우뚝한 산봉우리가 솟아있고 키 큰 소나무와 산줄기의 곡선이 멋진 실루엣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계곡에 물소리와 소쩍새 소리 눌은밥 영화 속의 밤 같았다. 도심의 화려하던 등불과는 달리 내면의 ..

등산 2009.05.02

시원섭섭함이란?

삶이 완성되기까지에는 몇 번의 이별이 찾아 오지만 강 물 위에 꽃잎을 띄워 보내 듯 간절한 염원을 담아 고이 보내야 하는 이별도 있었네. 새끼를 가진 삶이란 천일염보다 짜다,라고 했던 어느 작가의 말이 깊은 의미로 느껴지는 밤. 그렇게 염전 같았던 가슴으로 키워낸 딸을 떠나보낸 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더니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싶었다. 자식 하나를 올바르게 키워내는데 들어가야 하는 공은 어쩌면 짜디짠 염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역할의 일부가 끝났다는 안도감이 주는 일은 염전에 작은 물길 하나를 두어 민물이 들어오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몇 번의 이별이 또 얼마나 가슴을 적실지 모르지만 내가 잘 살아주는 것, 그것은 나를 위함이라기보다는 떠나간 내 일부를 위함일지도 모른..

living note 2009.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