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고무줄 같은 세월인 줄 알았다. 한 끝을 어디엔가 매어놓고 한 끝은 느슨하게 잡고 출발한 세월을 조금씩 감아쥐면서 몇 고비를 변해야 했던 역할을 어느 만큼 하고 나서 더러 매듭도 풀고 팽팽하게 잡고 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고무줄 한 매듭에서 추의 무게가 느껴지고 수직으로 늘어나 추락해 가는 나를 발견한 바쁜 마음에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달음박질로도 쫓아갈 수 없는 세월을 그리 느긋하냐고, 내모는 듯한 울림에 놀란 의식을 깨워 따뜻한 방을 박차고 삶의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 겨울 속으로 맞서기로 다짐한다. 첫 추위를 맛보는 피부는 까칠하게 곤두서지만 지난 계절들의 씨를 다 품고 있는 대지는 아름답기만 하다. 동면에 든 까만 나무는 봄을 품고 가을밤을 합창하던 소리들은 유충으로 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