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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대한 변명

세월이 흐르는 것이라고 누가 말하는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마는 계절같이 원하지 않아도 늘어나는 나이테같이 그것을 흐르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거스르고 싶은 마음속에는 오롯이 세월이 쌓이고만 있다. D데이에 동그라미를 쳐 놓고 기다리는 시간에도 쌓여있고 무심한 낚싯대에도 세월은 쌓이는 것이라고, 그렇듯이 세월은 흘러 없어지는 게 아니라 보물도 아닌 것이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 것에 대해 잡지 못하는 세월에 대한 변명을 해 본다. 한가족이 집안을 채우고 살 때는 작기만 하던 공간들이 방 임자들이 하나씩 떠나고 나니 필요치 않은 물건들만 버림받은 모양새로 퇴물이 되고 가져가라 해도 버리고 간 것들 어쩌면 남은 나같이 보이기만 하는데 이제 물건에 대한 집착은 버릴 때가 온 것 같구나.진열하고 싶은 것..

living note 2009.08.14

아기가 발견한 하늘

그날도 이랬을까요! 어느새 25년이 지나고 아이는 20대 후반에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문밖에서 엄마, 하고 뛰어 들어오더니"엄마, 나 하늘에 오줌 눴어"라고 하는 거예요. 하늘에 어떻게 오줌을 누지? 했더니 엄마손을 잡고 보여주겠다고 나간 곳에는 비가 오고 나서 오늘처럼 활짝 개이고 뭉게구름이 아름답던 날 길에 빗물이 고여서 거기에 하늘이 비친 것입니다. 그때 네 살짜리 아이는 빗물에 쉬를 하고는 하늘에 오줌을 눴다라고 하던 그 이쁜 말이 얼마나 시 적인지 지금 생각해도 순수한 동심이 너무 귀여워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집 앞 연못으로 나갔더니 연못에 이쁜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이 비쳐서 우리 아이가 보던 그때의 하늘 같았습니다.

living note 2009.08.09

오백 년 역사 속으로

서오릉(경릉. 창릉. 명릉. 익릉. 홍릉) 산책오백 년 역사 속에서 내가 보고 느낀 건, 산 자 보다도 더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명당에서 참 편안하게 잠드신 왕릉을 보니 이 나라의 수호신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울창한 자연림 속에 겹겹이 송림으로 둘러 쳐지고 사이사이를 계곡물이 자연적으로 흐르게 되어 있어서 수목도 잘 자라고 후대들이 찾아가도 훌륭한 쉼터까지 제공해 주시는 크나큰 왕들의 품 속 같았다. 뜨거운 여름이지만 하늘을 뒤덮는 숲이 있고 물도 있고 감촉 좋은 모래길로 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하루 종일을 다녀도 지루하지 않았고 계절마다 가야겠다는 다짐을 남겨두고 돌아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 중 명릉을 돌아보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능 바로 옆에까지 갈 수가 없어 정자각에서 사진을 찍고 보니..

등산 2009.07.31

피서는 이렇게

북한산 삼천사 계곡어느새 여름의 한가운데인 삼복더위에 들어섰다. 아침엔 처음으로 매미소리도 들었고 장마도 왔고 여름에 올 손님들은 다 모인 것 같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을 즐기게 되는 휴가철이구나. 나에겐 별 의미가 없지만 괜히 마음이 들뜬다. 피서라면 오늘도 가장 더웠다는 열기를 산속 계곡에서 한기를 느낄 정도로 잠겨 있었으니 남 부러울 게 없었다. 자연 속을 관통하는 대동맥의 흰 피 같은 우렁찬 계곡의 물줄기를 양 옆에 끼고 대청마루 같은 반석에 누워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을 쳐다보며 세상 잡음 다 쓸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마치 이 몸도 자연의 한 조각 세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놓고 즐거워하기에는 수해를 입어 힘든 처지에 있을 다른 사람들 생각이 나서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등산 2009.07.16

기다려주자

빨리 어떤 결단을 내야 하는 국민성이 나에게도 다분히 보인다. 그런데 작은 꽃 한 송이를 보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배운다 모종이 아닌 꽃씨를 뿌려 꽃 피워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자고 나면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화단으로 갔는데 어느날 한낮 그 무성하던 화초 잎에 구멍이 뻥뻥 뚫려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새파란 벌레 한 마리가 그 짖을 하고 있길래 빨리 없애야 한다는생각으로 옆에 있던 바퀴벌레 약을 뿌려 버렸다, 벌레 한 마리 손으로 잡지 못해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후, 벌레는 죽었는지 보이지 않고 한련화의 남은 잎들이 누렇게 말라버렸다. 꽃에게 너무 미안해서 사과를 하고 자책하면 지내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털이 다 뽑힌 싸닭 움 닭 같던 줄기에서..

living note 2009.07.14

폭우 속으로 산책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졌다 젖어도 상관없는 가장 편한 차림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는데역시 나다니는 사람 없고 자연만이 피하는 법 없이 굵은 빗방울에 아파 보였다. 동네 실계천에는 마치 큰 강처럼 흙물로 가득 찼고 길 건너 창릉천도 무섭도록 흙탕물로 수초들을 다 덮고도 뭔가를 더 쓸어갈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동네 생태연못에는 왜가리 한 쌍이 날아와 흙탕물을 비행을 하다가 먹이를 잡을 수 없어선지 물가를 서성이고 있었는데 늘 밤에만 산책을 하다 보니 오늘 처음 보는 한쌍이 너무 신기하여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날아갈 때까지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밤에 다니던 길을 다 돌고 집에 들어오니 벌써 서쪽하늘에는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눈부시게 하루를 마감하는 광채를 내고..

living note 2009.07.09

떨어져서 피는 꽃

여름에는 밤이 참 좋죠. 낮에는 차만 보이던 동네가 밤이 되니 온 가족이 강아지까지 다 밖으로 나옵니다. 공기는 또 얼마나 좋은지 풀벌레와 개구리 맹꽁이까지 합창으로 한여름밤의 꿈같은 향연을 매일 밤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달까지 밝아서 조명까지 비추이는 무대는 더욱 빛나는 밤입니다. 합창이 잦아들고 강가로 갔더니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이름 모를 꽃이 떨어져 잔디 위에서 다시 피는 것 같이 아름답게 보였어요. 어쩌면 떨어진 모습이 이렇게 이쁠까요? 밤은 깊어 가는데 이쁜 꽃과 밝은 달을 두고 들어 올 수가 없어 서성이다 떨어진 꽃을 주워서 작은 수반 꽃잎을 띄워두고 보려고 안고 왔습니다. 며칠은 더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식탁에는 산에서 찍은 사진을 유리 밑에 깔았더니좀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저의 작..

living note 2009.07.08

엄마는 휴가 중

30년 만에 찾아온 휴가를 즐기려 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보낼 방법도 없지만, 이것이 때로는 빨간 띠를 두르지 않는 파업 같기도 하고 자유가 지나쳐 방종 같기도 해서 어떤 때는 끼니때가 되어 솥뚜껑을 열면 밥이 없거나 국솥에 국이 없을 때도 있다. 아니면 휴업상태 같기도 해서 아침이 되어도 부엌으로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 그냥 음악만 듣고 있기도 하고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방 안에서 잔잔한 선률이 마음을 실어 일몰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먹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일상이 요즘은 먹는 건 별게 아닌냥 내 맘대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날짜도 요일도 알 필요가 없다 딱히 일정에 따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딸들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출가, 가출? 을 해 버리고 나니 마치 30년 만에 얻은..

living note 2009.06.25

오월 따라 님은 가고

2009.5.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노 대통령님의 장례식이 있었다(5.29). 장례식 애도기간에 산행을 할 수가 없어 산행을 미루다가 오늘 딸과 함께 북한산에 갔다. 마음속에는 세상의 모든 꽃들이 져버린 듯한 마음인데 산 입구에 들어서니 너무도 고운 해당화가 산 입구에 홀로 피어 있다. 이웃한 찔레꽃과 해당화가 다투어 가며 상큼한 향을 뿌리고 있는데 해당화 홑꽃잎이 노란 꽃술까지 드래내며 감추고 있는 속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다 보여주면서 순수하고 상큼한 향이 아픈 마음에 깊게 베어 온다. 한 주간 소중한 님을 보내 드리고 아직도 눈이 부어 있는데 하필이면 해당화는 왜 그리 곱고 향기롭던지, 산자들은 오월을 부여잡고 가지 말라고 푸르름에 젖어 있는데 이 아름다운 계절에 그분께서는 오월을 거두어 슬..

등산 2009.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