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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면 별것도 아닌데

KTX 안에서, 무료하고 따분하다. 그래서 차 안에서 접이대를 펼치고 글을 쓴다. 일인 승객일 때는 옆자리에 같은 성(性)끼리 자리배정을 해주는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옆에 앉은 중년 남성의 체취가 아주 불편하고 움직임도 불편하다. 하는 수 없이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를 쓰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여행이라는 것은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끼리 해야 단조롭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혼자서 몇 시간을 차를 탄다는 것은 고역이다.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들도 특별한 것이 없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야산과 평범한 촌락 풍경. 뭘 그리 떠나고 싶었을까.막상 떠나보면 별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모처럼 신은 하이힐은 자꾸만 반쯤 벗어 발에 걸쳐지고. 어색한 정장은 불편하기만 하고 잠이라도 오면 좋을 텐..

living note 2010.06.13

매화와 매실 사이

대서문에서 노적봉까지,유월 초순 날씨가 31도를 넘는 것이 정상인지, 아직은 아닐 것 같은데 햇볕이 너무 따가웠지만 습도가 없어 산을 오르는데는 힘들지만 숲 속에 잠겨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지나다니고 그 바람에 꽃향기도 실려오고 맑고 푸른 하늘은 산 아래 뙤약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고 나와는 상관없는 날씨가 되어버린다. 아직은 호박꽃 정도는 된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은 작년 사월에 다른 곳 보다 유난히 일찍 꽃이 피었던 하얀 꽃밭이었던 장소가 어떤 이는 복사꽃이라 하고 우리는 벚꽃이라 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아 열매를 보면 알겠지 하고 있다가 드디어 다시 찾은 우리들의 꽃 찻집에는 예상을 깨고 그것이 매화꽃이었고 상상도 못 했던 매실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그 아래 떨어진 열매만 해도 술 한독..

등산 2010.06.09

일진이라는 것

국사당에서 숨은 벽으로,어제는 일진이 안 좋은 날이라고 해야겠다. 한 번 약속을 하면 날씨가  크게 나쁘지 않은 한 우리는 먼저 약속을 깨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위험하지 않을 정도면 대비를 잘하고 출발을 한다. 그렇게 지켜 온 우정이 20년 세월이다. 그동안 숫한 산행을 하면서 궂은 날씨를 많이 만나기도 한 것 같다. 비도 맞고 눈도 맞고 짙은 안갯속에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갯속을 한 발씩 내딛을 때는 마치 낭떠러지에 빠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제는 비 올 확률이 높지도 않았지만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걸 출발 직전에 알았지만 그냥 출발했던 것에서부터 좋지 않은 징조였을까, 중간에서 비를 만났는데 용하게도 지붕 같은 바위를 만나 거기서 점심과 차를 마시고 있으니 비가 멎은 것 같아서 다시..

등산 2010.05.12

우리딸은 나보다 낫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나는 이날을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을까? 어릴 때는 엄마 가슴에 꽃 한 송이 달아 드리는 날로 생각되었고 성년이 되었을 때는 떨어져 살면서 변변치 못한 선물 하나 부쳐 드리는 것이 고작이었고, 결혼해서는 언제나 시부모님이 우선이고 친정엄마는 함께 보내는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그랬던 것이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특히 아버지는 왜 그렇게 정을 못 느끼고 무섭게만 생각했는지 만약에 지금도 살아계신다면 최선을 다해 효도하고 싶은데 이렇게 말하는 것도 변명 같기만 하다. 어제는 결혼한 딸이 양가 부모를 함께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는 뜻있는 시간을 갖었다. 난 생각도 못한 일인데 시댁 부모님이 먼저 함께 하자는 제의를 하셨기에 나로서는 더더욱 반가운 일이었다. 인연을 맺은 지..

living note 2010.05.08

마을 산악회를 다녀와서

우이령을 넘고 영봉, 백운대를 거쳐 위문으로 하산, 문밖만 나서면 늘 있어왔지만 새롭게 만나는 꽃들과의 대면은 새봄이라는 말을 하게 만든다. 모처럼 참석하는 우리 마을 산악회 등산 가는 날,  날씨까지 한몫 보탬이 되어 주었다. 지난겨울 유난히 많이 내린 눈이 대지의 동맥과 정맥뿐 아니라 모세혈관까지 다 돌아 나왔는지 아름다운 봄을 탄생시키고 그 봄은 아티스트가 되었다. 산 입구부터 연분홍 바탕색에 연두색으로 채색하며  설치미술 같은 봄 풍경을  끊임없이 파노라마로 이어가고 있었다. 요즘은 길을 테마로 관광상품을 만드는 게 유행처럼 번지는데 그런 유행의 상품이 아닌 6.25 전쟁 당시 피난민이 공포와 불안으로 걸어가야 했던 우이령길을 걸으면서 지금은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걷는 소풍길 같은 격세지감을 느..

등산 2010.04.25

꽃이 좋아지는 이유

난 야생화를 무척 좋아한다. 야생화, 명칭에서도 강인함이 느껴지고 나약한 뿌리가 어떻게 겨우내 언 땅에서 살아 남아봄이 왔음을 알았는지 양지바른 산기슭에는 한창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나고 있다. 너무 작아서 무심코 지나가는 발길에 밟히기도 하지만 너무도 예쁘게 꽃을 피워주고 있어 사랑스러운 꽃. 꽃집에 가면 개량종도 많고 외래종도 수없이 많지만 그것들은 잠시만 방심하고 돌봐주지 않으면 죽어 버리는데 야생화는 주인이 따로 없고 주인을 위해 꽃 피우지 않는다. 요즘은 산행을 하면서 자꾸만 눈길이 아래로 향하고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풀꽃에도 다 이름이 있어 어떤 이 가 하나하나 이름을 붙였을까 하고 이름이 생겨난 유래를 생각하기도 하면서 걷는 산행길이 참 즐겁기만 하다. 짧기만 한 봄날에 열흘남짓 ..

living note 2010.04.21

님 만나기 어려워라

북한산 노적봉 코스,바람결에만 전해 들은 님이 오셨다는 기별에 오늘에사 만나 뵙니다. 어인 걸음이 그리도 더디신지요. 남녘에 꽃 진다는 이야기도 풍문이라 여겼더니 봄인지 겨울인지 정체성도 모호한 이 추위에 벚꽃님, 당신 만나기 너무 힘들어 처음으로 만난 당신께  존칭인 님이라 부릅니다. 그리움 끝에 만난 님의 모습은 봉긋이 터질듯한 붉은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디엔 꽃이 피었다 하고, 어디엔 꽃이 진다고 하는데 난 오늘 처음으로 벚꽃을 보았다. 지난주만 해도 생강 꽃이 전부였는데 그새 북한산 대서문 앞 쪽에 벚꽃이 활짝 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이쁜 터질 듯 부푼 봉오리가 맺혀 봄을 연출하고 그 꽃그늘 아래 우리들의 찻집에선  커피보다는 향을 마신 듯 봄을 마신 듯 우리들의 즐거움에 놀란 꽃잎이 찻잔..

등산 2010.04.14

새로운 시작

의상능선을 타다. 나의 소우주에는 순환하는 사계절들로 꽉 들어찬 기분이다. 유래 없는 춘설로 계곡에는 여름 같은 물이 그들만의 멜로디로 봄바람과 합주를 하면서 흐르고 더디다고 재촉하던 봄기운도 밑에서부터 꽃을 피우면서 나와 같이 산행을 즐기며 산등성이를 넘는 것 같았다. 2010년 새봄이 시작되고 시산제도 지냈으니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으로 산행을 하게 되리라. 우선, 의상능선부터 다시 시작하려는데 그곳은 북한산에서 다소 험한 코스여서 피해왔지만 지난해 핼리콥터로 돌을 실어 나르고 했으니 위험한 곳이 어떻게 변했나 보고 싶기도 해서 코스로 잡았더니 역시 안전하게 돌계단으로 잘 짜여 있어서 이제는 걱정 없이 누구나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거의 수직상승으로 올라야 하는 의상능선, 용혈봉, 용출봉...

등산 2010.04.06

법정스님의 향기

봄은 오고 꽃은 피는데 스님의 낙화를 어찌 보라시는지요 아름다운 꽃도 향기 없이 지고 마는데 스님의 향기는 너무도 짙어 세세생생 `맑고 향기롭게`로 남습니다. 스님의 말씀 구구절절은 세상에 굴러 다니던 때묻은 말씀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세상을 굴러다니는 법륜이 되어 미혹한 중생의 마음에 큰 울림이 되고 자나 깨나 지니고 싶은 채움이 되었습니다. 모든 걸 다 비워도 그것이 충만으로 되는 건 스님의 향기입니다. 이 혼란한 시기에 진정한 멘토가 되어주실 선지자님 한꺼번에 떠나시니 텅빈 충만을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서운함만 가득합니다. 민주화의 꽃 한꺼번에 낙화되고 정신적 지도자 한꺼번에 떠나시니 혼란한 세상에 우매한 방황만이 감돕니다. 스님의 재가 불씨가 되어 다시 세상에 빛이 되어 주시옵소서! 법정스님을 추모하..

living note 2010.03.15

자연의 모성

진관공원과 북한산 어제 본 것이 꿈의 환영인가,춘설은 그렇게 맥없이 녹아내리고 화폭 같던 공원에는 나목만이 황사에 흔들리고 있다. 생강꽃이 필 무렵인데 혹한 보다 더 많은 눈이 오는 게 변고라고 할 수밖에. 자연이라고 모성이 없겠는가. 앙상하고 헐벗은 母木이지만 자식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따뜻한 모성은 사람과 같은 것이어서, 메마른 엄마나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보이지만 몸속에는 고운 꽃과  잎을 다품어 안고 긴 겨울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꿋꿋이 견디어 내고 있다. 그러면서 선뜻 봄 속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마치 부모가 어린아이를 험한 세상 밖으로 내 보내지 못하는 심정으로 춘설을 염려했던 것 같다.  꽃샘추위가 잦아들 무렵 이제는 내어 놓아도 괜찮겠지 싶어 그냥 피게 두었던 철없는 어린 꽃이 ..

등산 2010.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