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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의 단계

수다에도 단계가 있다. 우선 문화라는 걸 살펴보면 그것이 제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아 보이는 어떤 것에 서서히 젖어들다가 타성이 되고 공감대가 형성이 되다 보면 문화로까지 정착이 되는 듯하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 가족제도가 대가족 중심에서 언젠가부터 핵가족화가 되어버린 것이 어느새 문화처럼 당연시되고 자식들뿐 아니라 부모들까지도 함께 사는 걸 대부분 힘들어하는 추세다. 그렇게 되어가는 원인은 개인주의가 팽배해져서 효 사상은 점점 쇠퇴해 가고 매사에 자신을 위주로 생각하는 관점이 두드러지다 보니 서로의 독립된 생활에서 행복을 만들어 가는데 익숙해지는 것이다. 핵가족의 정착은 우리들의 수다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떠는데 친구가 그런다. 시집간 딸이 아이를 낳아서 ..

living note 2010.01.27

2010년 첫 산행

경인년 새해가 된지도 벌써 한 달이 반 이상 가 버렸다. 눈 덮인 산에 누구보다 먼저 오르고 싶었던 내가 어쩌다가 그 좋은 설경을 다 놓치고 이제 눈이 물로 되어가는 때에 찾게 되었는지, 처음엔 눈이 너무 많아서 못 가고 그다음엔 혼자는 못 가고 그러다가 뒤늦게 오늘에야 갔더니 아직도 음지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양지에는 모처럼 기온이 올라 녹은 눈이 질퍽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모험심을 버려야 하는데 오늘은 평소에 가지 않던 코스를 택해서 한참 오르는데 가파른 길에 눈까지 쌓였고 잡을 곳도 발 디딜 곳도 없는 눈 쌓인 바위에서 진퇴양난에 빠져 속으론 얼마나 두려웠던지, 혼자서 간밤에 꾸었던 꿈이 생각나는 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찔한 경험을 했지만 정상에 서는 순간 안도의 긴 숨을 토해내면..

등산 2010.01.19

주부의 정년

주부의 정년은 가지는 처내고 몸통만 남은 고목같은 것/ 어느날 서류 속에도 가지치기가 끝나고 동그마니 몸통만 남은 것/ 가지는 또 다른 땅에 삽목의 뿌리를 내리고/ 고목의 홈통 한 켠에 생사가 불안한 새잎이 돋고 새로운 가지를 키운다. 나는 새로운 가지/ 언제 내가 이렇게 평화로웠던가/ 언제 내가 이렇게 자유로웠던가/ 언제 내가 이렇게 한가로웠던가/ 언제 내가 걱정없는 날이 있었던가, 아! 지금이 좋다. 고목에 잎을 피운 지금이 참 좋다. 변덕스런 교육정책, 바늘구멍 취업난도 강건너 불구경/ 그러나 한 가지 양념처럼 남겨 놓은 일/ 밑그림도 채색도 끝나고 화룡점정만 남았네/ 사랑으로 시작한 인생 사랑으로 열매맺고/ 사랑으로 떠나보낼 예쁜 꽃송이 하나/화룡점정 되는날은/ 두번 째 식목일/ 마지막 꽃잎 하나..

living note 2010.01.14

2010년 해돋이

삼천사에서 출발 사모바위 능선 해돋이,새 천년이 시작되고 나서 아홉 고비를 무사히 넘긴 10년째 되는 해맞이는 아주 특별했다. 영하 14도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마음이 먼저 나서는데 몸이 따르지 않을 수 없음이라. 작년에는 백운대에서 해맞이를 했는데 오늘이 작년보다 덜 추운 것 같고 다행히 바람이 없어 맑고 투명한 새벽하늘에 꽉 찬 만월까지 동행해 주어서 오르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아주 특별한 것은 해님 마중 가는 길이 하얀 눈이 밝혀주고 만월이 살펴주고 어둠 속을 함께 가는 길은 작은 불빛이 별빛처럼 움직이는 것이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세 가지의 절묘한 만남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야경이 마치 은하수 별빛처럼 고와서 말로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다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 느꼈..

등산 2010.01.01

송년 산행

백화사에서 출발 국녕사로 하산.오랜만에 친구들과 송년산행을 하게 되었다. 대설주의보가 내린 일기예보를 내심 반기면서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가볍게 출발했는데도 집에 오니 네시 반에 도착할 만큼 산행거리가 짧기도 했지만 북한산 아래 사는 혜택을 많이 보는 셈이다. 오르는 동안은 별로 힘들지 않았고 가사당 암문에 이르게 되자 눈보라가 치면서 싸락눈이 내리고 바람이 심했지만 아는 길이기에 느긋하게 즐기면서 하산길로 접어드는데 조금은 아쉬움이 생기기도 했다. 이왕이면 싸락눈이 아닌 함박눈을 맞으면서 높은 곳에서 하얗게 덮인 산봉우리와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었는데 아마도 예보대로 라면 큰 눈은 밤새 내려 아침을 하얗게 밝힐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새하얀 눈길을 걷는 날엔 세월이 주는 밭이랑 같은 숫자는 우..

등산 2009.12.29

함께 사는 세상이었으면

연일 기록을 경신하며 메인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혹한 소식에 문득 노숙하는 사람들이 걱정이 된다.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제대로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공간엔 관리자들이 돌아가는 밤 시간에는 다 봉쇄되고 겨우 맞바람이 치는 어느 역 통로에서나 한 자리 얻을 수 있었던 그들은 다 어디에서 이 추위를 견뎌내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경쟁으로 태어난 다 같은 일등 선수들인데 어찌하여 모든 삶의 경쟁에서 밀려나 하필이면 그들일까? 무능해서라고, 아니면 억지로 운명으로 까지 치부해 버리기엔 사회구조엔 문제가 없을까? 발전하는 서울의 모습 이면에 멋진 음악에 춤추며 발광하는 반포대교 분수가 아름답게 보이겠는가. 주거가 헐리고 쾌적한 공원으로 탈바꿈되는 세련된 도시가 발전으로..

living note 2009.12.19

반추

산책할 때는 그냥 걷기만 하는 것아 아니다. 혼자 조용히 걷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많은 것을 보려고 애쓴다. 오늘도 비 온 후에 우연히 본 특별한 것이 있다. 비가 조용히 내렸는지 간밤에 내린 비로 오목한 낙엽 한 장에 담겨 있는 빗물에서 그만 나신을 보고 부끄러운 듯 아무도 모르게 벗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지난날을 반추하고 있었다. 빼곡히 달고 있던 잎들을 다 떨구고 난 빈 몸을 본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해 살이를 다 끝내고 홀가분했을 수도 있고 새싹에서 단풍이 질 때까지의 변신을 거듭했던 깊은 회상에 잠기며 또다시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living note 2009.12.05

삶에도 탄력을 유지해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고무줄 같은 세월인 줄 알았다. 한 끝을 어디엔가 매어놓고 한 끝은 느슨하게 잡고 출발한 세월을 조금씩 감아쥐면서 몇 고비를 변해야 했던 역할을 어느 만큼 하고 나서 더러 매듭도 풀고 팽팽하게 잡고 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고무줄 한 매듭에서 추의 무게가 느껴지고 수직으로 늘어나 추락해 가는 나를 발견한 바쁜 마음에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달음박질로도 쫓아갈 수 없는 세월을 그리 느긋하냐고, 내모는 듯한 울림에 놀란 의식을 깨워 따뜻한 방을 박차고 삶의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 겨울 속으로 맞서기로 다짐한다. 첫 추위를 맛보는 피부는 까칠하게 곤두서지만 지난 계절들의 씨를 다 품고 있는 대지는 아름답기만 하다. 동면에 든 까만 나무는 봄을 품고 가을밤을 합창하던 소리들은 유충으로 품고..

living note 2009.11.16

가장 아름다운 법당

진관 공원을 걷다. 부처를 형상으로 모시고 절을 짓는 것은 기도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함이지 그곳에 부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부처는 마음속에 있고 기도는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停)이라고 걸어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조용히 있거나 이 모든 행위 속에서도 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자유롭고 자애로움인가, 이 가르침이 시간의 제한을 받는 나에게는 참으로 큰 위로가 되어서 난 집 앞 야산 공원을 나만의 법당이고 또한 최고의 법당이라 생각하며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서원을 담아 고요히 산책을 하고나면 온 마음이 후광에 쌓이는 것처럼 환희를 맛보기도 해서 굳이 절을 찾지 않은지가 참 오래된 것 같다. 자연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자연의 순리에서..

living note 2009.11.09

내 고향에도 가을이

친정 가는 길, 거대한 수채화 화폭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그런 거였다. 짙은 안개가 원경을 수묵담채화로 만들기도 했지만 조금씩 벗어나는 안갯속의 화폭은 명산의 화려한 단풍이 아니라 나지막한 야산에 여러 가지 색채가 조화를 이루며 갓 미술을 전공한 순수함의 작품 같기도 한 그 풍경 속 끝 지점에 아련히 남아있을 친정으로 내달리는 가족여행이 10월의 마지막 날을 추억의 한 페이지로 만들었다. 어머니가 떠나신 친정이 자꾸만 발길이 멀어지는 건 무조건 갔던 만만한 곳이 아니라 볼일이 생겨야 찾게 되는 거리가 되었지만 들어서면 아직도 엄마의 따스함이 그대로 느껴질 만큼 가을걷이를 보따리 보따리로 싸 주는 오빠 내외의 인정이 엄마의 손길을 그대로 아어가고 있어 아직도 내게는 변함없는 친정이다. 당일 돌아와야..

living note 2009.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