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한여름의 죽은시간.

반야화 2010. 8. 18. 15:30

고요하다. 어둠의 정적 때문이 아니라 창밖의 나무들이 그 잔가지 끝에서 미동의 떨림도 없이 매달려 있다는 것은 공기의 움직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대낮의 소음 속에서 나무만이 고요하고 그래서 땀줄기는 비너스 계곡을 이룬다.

 

세상이 먼저 깨어나고 그 밝음에 내가 깨어났을 때의 시작은 참 아름다움이었다. 맑고 투명한 빛이 창으로 넘어 들고 살랑살랑 바람결이 가을 맛까지 들더니 한낮이 되니 아침 찬 바람이 여름 열기를 밀어내기엔 아직 역부족인가 보다. 지구는 쉼 없이 돌아 가는데 복지부동하는 내 시간은 죽은 시간으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바늘 같은 솔잎도 흔들리지 못하는데 매미만이 짧은 생애를 열심히 울어대고 있네. 종류도 많은 매미들은 짧은 생명의 운명이 다하기 전에 어떤 결말이라도 맺어야 하고 유충이라도 남겨야 하기에 저토록 바쁘게 날갯짓하는데 그 떨림만이 나무들의 고요를 흔든다. 이 작렬하는 열기가 살아있는 시간이 되게 무엇이라도 한다는 것이 짧은 한 줄 여름을 써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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