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
어느 깊은 산골에서 온 청솔가지 하나가 이렇게 많은 새끼를 낳았다 제 몸에 흑심을 박고 새 생명을 얻은 청솔가지는 내 아이들의 필통 속에서 몽당연필로 두 번째 태어나고 깎이고 닳아서 이제는 영면에 들어 추억이란 이름으로 세 번 살고 있다.
나뭇결이 깎이고 흑심이 닳아 작아진 키만큼 내 아이들은 자라서 고학년이 되어 갔고 작아진 부피만큼 내 아이들의 지식은 큰 부피로 어린 머릿속으로 채워져 갔을 것이며 내 젊음도 조금씩 사위어 가겠지.
저녁마다 네댓 자루씩 연필을 깎아 가지런히 필통에 넣어주며 이쁘게 키워냈던 내 아이의 어린 시절도 나의 젊음과 함께 병 속에 고이 잠재워 두게 됨은 어느 날 샤프란 놈이 필통을 점령하고 나의 수고는 끝이 났다
사화 생활은 몽당연필에서 시작되고 더 큰 사회로 나아간 내 딸들은 손가락 하나로 세계를 움직이는 지구의 사공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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