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장마빗 소리

반야화 2010. 7. 2. 12:43

장맛비 소리,

 

아내는 솥뚜껑 걸어놓고 지짐을 붙이고 바깥양반 대청마루에 누워 하염없는 빗소리 듣는 날/노부부의 양철지붕 때리는 소리는 내 집에 물드는 소리/ 부지런한 농부에게는 마른논에 물드는 소리/ 알뜰한 주부에게는 구석구석 곰팡이 피어나는 소리/부잣집 안방마님에게는 휘모리장단쯤으로 들리는 소리/시인에게는 시심에 물 오르는 소리/산천 초목에게는 갈증에 물 넘어가는 소리/ 뼈골이 드러난 계곡에게는 북적북적 모여드는 사람의 소리/ 파헤쳐진 강둑에게는 강바닥 메워지는 소리다.

 

가장 아프게 들리는 소리는 가난한 노부부의 방안에 물 들어차는 소리다. /가난도 서러운데 해마다 피해는 그들의 몫이네/

휘모리장단에는 춤이나 추면 되지/ 온 국민이 이 같은 소리로 들리는 것은 산이 된 흙무덤이 본래로 돌아가는 근심스러운 소리네/ 나라님요! 큰 강에 수해 난 일 보셨나요 힘없는 백성 앞마당으로, 안방으로 물드는 소리 들어보소/ 해마다 보는 장면 어찌 안 보이시나요/ 눈물로 한탄하는 피맺힌 소리는 하늘로 돌아가 눈물 되어 흐르는가/ 무심한 하늘이 하루 빛 주거든 누더기 빨래들 깃발처럼 날리어라/ 어디로 가야 하나 무엇을 먹어야 하나 한 맺힌 이 세상 원수 같은 장맛비야.

 

유난히 수해가 많은 해다. 방 안에 물드는 건 차마 볼 수가 없는 괴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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