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우리딸은 나보다 낫다.

반야화 2010. 5. 8. 12:48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나는 이날을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을까? 어릴 때는 엄마 가슴에 꽃 한 송이 달아 드리는 날로 생각되었고 성년이 되었을 때는 떨어져 살면서 변변치 못한 선물 하나 부쳐 드리는 것이 고작이었고, 결혼해서는 언제나 시부모님이 우선이고 친정엄마는 함께 보내는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그랬던 것이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특히  아버지는 왜 그렇게 정을 못 느끼고 무섭게만 생각했는지 만약에 지금도 살아계신다면 최선을 다해 효도하고 싶은데 이렇게 말하는 것도 변명 같기만 하다.

 

어제는 결혼한 딸이 양가 부모를 함께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는 뜻있는 시간을 갖었다. 난 생각도 못한 일인데  시댁 부모님이 먼저 함께 하자는 제의를 하셨기에 나로서는 더더욱 반가운 일이었다. 인연을 맺은 지 얼마 되지는 않지만 만나면 참 편안하고 정을 느끼게  하시는 좋은 분들 이어서 어색함도 없고 그래서인지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서 아쉬움도 남는 날이 없다.

 

우리 모녀는 먼저 자리에 앉았는데 두 테이블을 어떤 구성으로 자리를 마련해야 할지를 한참 생각하다가 딸이 시부모님과 한 테이블에 앉고 나는 사위와 함께 앉았는데 아주 잘 짜인 구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약주를 좋아하시는 시어른께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딸을 보면서 얌전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끝없이 시어른과 대화를 이어갈 줄도 알고 따라 주시는 줄잔을 홀짝홀짝 받아 마시면서 어른들의 상대가 되어 드린다는 것이 또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모습이 아, 저것이 도리고 효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란 말도 있듯이 딸아이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보는 눈빛은 마치 연인을 바라보듯이 포근하고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역 역했다. 그런가 하면 사위는 나를 위해서 음식을 먹기 쉽게 잘라주고 익혀주고 앞으로 가져다주면서 식사하는 시간이 참 즐거웠고 딸 내외가 각자 다른 테이블에 앉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작은 딸은 어제가 생일이었는데 함께했으면 겸사겸사 참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으니 미리 엄마가 필요한 것들을 다 해주고 제주도로 내려가서 해마다 어버이날과 생일을 주고받는 기념일을 올해는 할 수 없었으나 별도로 좋은 시간을 가졌다니 다행이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헤어져 집에 오니 흐뭇한 마음이었고, 나는 부모님께 효도도 못했는데 우리 딸은 나보다 낫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모르는 시댁 어른들을 대하는 딸의 심성이 좋아 보여서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를 잘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living no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마빗 소리  (0) 2010.07.02
떠나보면 별것도 아닌데  (0) 2010.06.13
꽃이 좋아지는 이유  (0) 2010.04.21
법정스님의 향기  (0) 2010.03.15
신도림역  (0) 2010.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