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안에서,
무료하고 따분하다. 그래서 차 안에서 접이대를 펼치고 글을 쓴다. 일인 승객일 때는 옆자리에 같은 성(性)끼리 자리배정을 해주는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옆에 앉은 중년 남성의 체취가 아주 불편하고 움직임도 불편하다. 하는 수 없이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를 쓰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여행이라는 것은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끼리 해야 단조롭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혼자서 몇 시간을 차를 탄다는 것은 고역이다.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들도 특별한 것이 없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야산과 평범한 촌락 풍경. 뭘 그리 떠나고 싶었을까.막상 떠나보면 별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모처럼 신은 하이힐은 자꾸만 반쯤 벗어 발에 걸쳐지고. 어색한 정장은 불편하기만 하고 잠이라도 오면 좋을 텐데 민감하기는 별나게 지나치고 이럴 바에야 편안한 안방에서 멋진 영화음악 한 편 듣는 것보다 못하지 않는가.
늘 메여있다는 생각에서 어디로든 떠나면 그 자유가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몸과 마음은 풀려났으나 대신 발이 갇힌 꼴이다. 난 역시 등산복 차림이 제격이야. 발 편하고 옷 편하고 모든 게 자유 그 자체다. 모처럼 부산에 친구 딸 결혼식이 있어 친구들이 함께 겸사겸사 부산에서 보자고 해서 갔던 이야기다. 친구라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이 정도는 돼야 하는데 자주 만나는 친구끼리는 수다 한 줄이라도 느려놓으려면 줄을 서야 하고 때로는 남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새치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는 함께한 시간들이 적고 공감하는 화젯거리를 이어나가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더니 전화는 가끔 해도 전화로는 깊이 있는 얘기를 잘 안 하는 편이라 그런지 그저 안부를 묻고 나면 별로 할 얘기가 없었다.
나만 그런가? 그런데 왠 남자 친구는 벌써부터 내가 왔는지를 두리번거리며 찾았다고 한다. 왜 그렇게 보기 힘드냐고, 그런데 남자 친구 하고는 더욱 할 말이 없어 웃기만 했다. 어쩌면 표현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변한 모습 때문일 수도 있어. 대놓고 "넌 왜 그렇게 늙었어"라든가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이래저래 생각하는 그 친구의 얼굴에서 그동안 거울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내 모습을 상대에게서 찾아야 했던 비애 같은 감정 때문일 수도 있었어.
내가 너무 자연에만 심취해 있는게 아닐까 인간관계가 왜 이렇게 심드렁한지, 이러면 안 되는데 다음번에 만나면 좀 더 잘해야겠다. 주도권을 잡고 카페에서 얻은 유머라도 공부해서 웃겨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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