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설악산 공룡능선

반야화 2010. 7. 19. 14:53

장마철에 떠난 우중산행

우리에게 비박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야영쯤으로 생각했더니 이번 경험에서 그 개념을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비박은 비를 맞으면서 고생스럽게 자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공룡을 알현하러 간다고 했으면 어땠을지, 감히 공룡을 잡으러 간다고 나섰으니 먹히지 않고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한다. 고문님의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포기하는 마음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밀어붙이는  특기는 우리 나리에 딱 한 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좋은 뜻의 밀어붙이기의 흔들림 없는 힘이 또 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도 있었다.


누군가가 중심이 되어 단체를 이끌지 않으면 언제나 일은 그르치게 되어 있는데 무모하게도 그냥 비가 오는 것도 아닌 적중률이 높은 장마철 호우주의보,그 우중에 걱정 반 행복 반으로 떠났는데 개인적으로는 도심이나 집안에선 늘 건물 사이로 조각난 하늘만 보다가 교외로 나가니 확 트인 드넓은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비도 잠시 멈추는 듯했고 뜨거운 날씨보다 물을 머금은 푸른 산들이 양 옆으로 끝없이 이어진 픙경들이 참 좋았습니다. 우선 거짓말 조금 보태서 햇빛 쨍쨍이라고 식구들한테 문자를 보내어 안심을 시킨 다음 나머지는 걱정 같은 건 접어두고 룰루랄라로 설악동에 들어섰는데 잘 생긴 울산바위가 설악산의 첫인상을 보여주며 염려 말라는 손짓을 해 주었다.

 

금강굴까지 오르는데 보슬비인지 안개비인지 그런것이 약간 왔지만 "이 정도는 야채가게 주인이 시든 야채에 물을 뿌려 살아나게 하는 정도 지" 생각하며 뜨거운 날씨보다는 이 정도 비를 맞는 건 오히려 우리도 더욱 싱싱하게 살아나리라 생각했다. 이번에 느낀 게 참 많지만 그중에 가장 달콤한 휴식은 물먹은 짐을 내려놓고 선체로 한쪽 다리 올리고 쉬어가는 휴식이 라말로 가장 달콤한 휴식이라고 생각되었다. 잠시잠시 쉬면서 올라 갈수록 첫인상인 울산바위에서 이미 느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설악산 특히 공룡능선은 정말 멋진 산이었다. 운무 속에 숨었다 드러났다 하는 운치는 지상에 있는 천국 같았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비는 점점 굵어지고 잠자리를 어디에 정하느냐가 문제였다. 산장에서 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안되는데, 여기 오려고 침낭까지 샀으니 써먹어야 돼" 하고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래서인지 계획대로 공룡능선에서 비를 맞으며 대형 비닐로 지붕을 만들고 좀 협소한 것 같지만 그 안에서 우선 저녁부터 해결하기로 하고 모여 앉아 밥을 하는 동안 술부터 한 잔 하고 바람에 불꽃이 날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밥맛은 최고였습니다. 하찮은 반찬이었지만 모두들 잘 먹어주는 게 참 기분이 좋았다.

 

옛날에 빨치산이나 산적들의 생활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든든한 보디가드들이 지켜줄 것 같아서요. 그렇게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올리가 없죠.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비닐 지붕이 날아가버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나,천둥번개라도 치면 어떻하나 그런 것이 염려되어 밤새 기도를 했다. 함께 떠났으니 사소한 일까지 모두 한마음이어야 하고 모두가 안전해야 되기 때문이다. 잠은 안 오고 긴 밤을 지새우는데 바람이 꼭 파도같이 일어나는 걸 느꼈다. 아래쪽에서 웅~~~ 하고 소리를 내면서 올라오더니 철썩하고 비닐 지붕을 때리더니 후드득하고 비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반복이 되었다. 

 

얼마 전에 내가 장맛비의 글을 썼는데 거기다가 한 줄 더 첨부해야 될 것은 뉴타운 산악회의 장맛비 소리는 감자돌이님 집에 물드는 소리. 이렇게 한 줄 더 첨부해도 될 것 같은 일인용 텐트에 물이 들어 수재민이 된 감자돌이님이 새벽에 침입하는 바람에 겨우 쪽 잠이 들었던 사람들 비닐집 한 채가 고래 등 같은 집 보다 낫다는 걸 알았을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는 선우 아범님이 운전하느라 힘들어서인지 코를 골면서 좀 자는 것 같았고 옆에서 신성님이 계속 투덜거리면서 속으로 튀겨 들어오는 비하고 씨름을 하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자리를 바꾸지 않고 끝까지 누워있었다. 누워서 가만히 생각하니 그렇게 모진 비바람 속에서 꽃은 어떻게 피고 나무는 어떻게 견디어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보여줄까 생각하니 강인한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조금 아쉬운 건 처음에 고문님이 미끼로 내세웠던 은하수나 하늘 지붕의 아름다움과 일출과 일몰도 볼 수 없다는 것이  내내 미련에 남을 것 같았다. 이번 산행은 나의 한계에 도전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같은 공룡능선의 도전이었는데 다녀와서 느낀 건 아직은 마침표를 찍지 않고 쉼표 하나를 찍어두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컨디션이 좋은 편이다. 10년간 감기라고는 안 걸리다가 하필이면 대 작전을 앞두고 감기에 걸려서 좀 힘든 것 외엔 아주 좋은 편이었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침상에 누워 가장 불안한 잠을 자야 했던 이번 산행은 잊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우리를 이끌어주신 고문님과 여자들한테 보조를 맞추어 주신 리더님과 왕복 운전을 하시느라 고생하신 선우 아범님과 신성님께 감사드린다.

 

 

 

 

 

 

 

 금강굴

 

 

 

 

 

 

 

 

 

 

 

 

 

 

 

 

 

 

 

 

 

 

 

 

 

 

 

 비닐 지붕 위에 떨어진 빗방울

 

 

 

 

 

 

 

 

 

 

 

 

 

 울산바위가 보인다.

 

 

 천불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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