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당에서 숨은 벽으로,
어제는 일진이 안 좋은 날이라고 해야겠다. 한 번 약속을 하면 날씨가 크게 나쁘지 않은 한 우리는 먼저 약속을 깨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위험하지 않을 정도면 대비를 잘하고 출발을 한다. 그렇게 지켜 온 우정이 20년 세월이다. 그동안 숫한 산행을 하면서 궂은 날씨를 많이 만나기도 한 것 같다. 비도 맞고 눈도 맞고 짙은 안갯속에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갯속을 한 발씩 내딛을 때는 마치 낭떠러지에 빠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제는 비 올 확률이 높지도 않았지만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걸 출발 직전에 알았지만 그냥 출발했던 것에서부터 좋지 않은 징조였을까, 중간에서 비를 만났는데 용하게도 지붕 같은 바위를 만나 거기서 점심과 차를 마시고 있으니 비가 멎은 것 같아서 다시 오르는데 가장 가파른 숨은 벽 능선에서 다시 비를 만나고 거센 바람까지 우리를 밑으로 떠밀어 낼 기세였다, 더구나 맞바람이 치는 바람길에 서 있으니 추워서 체온이 내려가고 손이 시리고 덜컹 겁이 나기 시작했다. 거기서도 비를 피할 수 있는 바위틈이었지만 워낙 바람이 거세어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우산살을 뜯어내고 만든 그 천으로 한쪽을 즉석에서 뜯어 뒤집어쓰고 길을 가는데 비에 젖은 길이 미끄럽고 길이 험해서 참 힘들었던 산행이었지만 잠깐씩 햇빛도 나고 산행은 무사히 마쳤다.
" 이 모든 게 다 자연의 일부니까 즐겁게 함께하자"라는 마음으로 생각하니 재미로 느껴졌다. 그런데 하산 마지막 단계에서 또 난간을 만났다. 한 발 잘못 들은 길이 화근이 되어 정상적인 길이 아니라 개인의 땅이라서 그런지 사방이 철조망이고 오두막에는 큰 개 서너 마리가 짖어대고 나갈 수는 없고 억지로 철조망을 들치고 나갔는데 가시덤불에 찔리고 걸리고 겨우 빠져나가서 한숨을 토하다가 몸에 붙은 덤불을 떼고 쑥도 한 줌 뜯고 해서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커브 때문에 차가 오는 걸 너무 갑자기 알게 되어 그만 등산스틱을 놓고 차를 타서 세 코스를 가다가 다시 내려 그 자리에 갔는데 이미 누가 주워 간 후라 허탈한 마음으로 "오늘 나쁜 일진의 대가치곤 약소하다"뭐 그 정도로 생각하고잊어버리기로 하고 집에 도착하니 피로가 몰려와서 여러 가지로 힘든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일진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운세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산 공룡능선 (0) | 2010.07.19 |
---|---|
매화와 매실 사이 (0) | 2010.06.09 |
마을 산악회를 다녀와서 (0) | 2010.04.25 |
님 만나기 어려워라 (0) | 2010.04.14 |
새로운 시작 (0) | 2010.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