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매화와 매실 사이

반야화 2010. 6. 9. 12:45

 대서문에서 노적봉까지,

유월 초순 날씨가 31도를 넘는 것이 정상인지, 아직은 아닐 것 같은데 햇볕이 너무 따가웠지만 습도가 없어 산을 오르는데는 힘들지만 숲 속에 잠겨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지나다니고 그 바람에 꽃향기도 실려오고 맑고 푸른 하늘은 산 아래 뙤약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고 나와는 상관없는 날씨가 되어버린다.

 

아직은 호박꽃 정도는 된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은 작년 사월에 다른 곳 보다 유난히 일찍 꽃이 피었던 하얀 꽃밭이었던 장소가 어떤 이는 복사꽃이라 하고 우리는 벚꽃이라 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아 열매를 보면 알겠지 하고 있다가 드디어 다시 찾은 우리들의 꽃 찻집에는 예상을 깨고 그것이 매화꽃이었고 상상도 못 했던 매실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그 아래 떨어진 열매만 해도 술 한독은 너끈히 담글 수 있을 정도였다. 배낭에 술만 있었더라면 그 자리에 매실을 담고 묻어두면 내년에 또 찾아가 권주가를 부를 수 있었을텐데 아, 아쉽다. 하면서 쳐다만 봐도 풍요로운 나무 아래 언제나처럼 매실향이 있는 커피를 마시고 다음 코스로 가는데 그새 계곡물이 말라 숲도 갈증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여름에는 산을 오르는 시간보다 좋은 곳에 쉬는 시간이 더 많고 반석에 그늘까지 있다면 우리는 드러눕는다. 어제도 노적봉을 바라보며 누워 있는데 공사장에 돌을 실어 나르는 헬기가 머리 위로 굉음을 내면 서지나 다니는데 귀가 아프고 돌이 떨어질까 봐 두려웠지만 참으면서 한참을 쉬다가 하산을 하는 중에 맑은 물이 있어 발을 담그고 있으니 땀방울은 제구 멍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다.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늘 마음에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고 그곳에 함께 갈 친구가 있다는 것도 행복이다. 이만하면 잘 사는 거지, 행복은 순간순간 느끼는 것이지 어디에다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행복한 하루였다. 그런데 웬일이야, 집에 오니 낮에 보았던 매실이 20킬로가 나를 기다리고 개봉도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낮에는 매실 때문에 행복했는데 저녁때는 매실 때문에 울상이다. 그 매실을 그냥 둘 수가 없어 꼭지를 따고 씻어 말려서 설탕에 재우고 나니 새벽 한 시가 되었다.

에고, 오늘은 매실 때문에 웃고 우는 하루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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