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다시쓰는 공룡능선

반야화 2010. 8. 2. 18:14

 

 

설악산 공룡능선을 다녀온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22킬로미터, 12시간 행보, 1275봉의 높이 이 험난했던 여정을 지친 몸으로 대충 써 두었던 산행기가 뭔가 빠진 듯해서 다시 쓰려는데 아직도 그날의 여정이 땀이 밴 채로 마음속에 뭔가 못다 한 말들이 남아있어 마음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여행길에 날을 잘 받는 것도 행운일 것 같지만 어쩌랴! 받아놓은 날을. 장마철에 비를 파하는 것 또한 지어놓은 복 통장이 없이는 귀하게 찾아 쓸 수는 없는 법, 비를 맞으며 체력을 아끼면서 산을 오르는 길은 즐거운 고행이었다. 고생하지 않고 공짜로 얻어지는 가치는 없다.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기쁨을 맛 보려는 것은 노력도 하지 않고 출세를 하려는거나 마찬가지인 욕심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그날의 고행은 행복의 가치를 얻기위한 충분한 노력이었고 그만한 댓가를 치른 소중한 기쁨이었다.

 

아무런 구조물도 없었던 시절 장군봉 뱃속 같은 금강굴을 원효대사는 축지법으로 단번에 올랐을까 생각하며 휘몰아치는 바람을 타고 금강굴에 올라 무사 산행을 기원하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마치 원효대사가 사바를 내려다보며 중생 구제를 위한  구도의 날들을 보냈을 그런 세월을 거슬러 보는 역사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부처님의 가피를 구하고 잠시 쉬어 다시 시작하는 길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체력을 아껴야 한다는 리더님의 말과 나와 친구가 없었다면 아마 남자분들 힘자랑하듯 한꺼번에 체력을 다 쏟았을지도 모르지. 우리가 중간에 서 있으니 자연적으로 도보는 느려지고 체력소모를 줄이는 장치 역할을 한 것이 되었다. 경마장의 꼴찌 기수처럼 마등령에 서서 바라보는 골룡능선의 천화대는 거대한 하나의 산 뿌리에서 피어난 수많은 바위꽃이 너무도 아름다워 더 이상 발걸음을 뗄 수 없도록 붙잡아 두고 미인계를 부리듯 해서 우리는 온 마음을 다 던져주고도 후회 없을 유혹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산세는 억겁의 세월이 쌓여 만들어졌을 위용을 우리는 한순간 짧은 시간에 다 보았다고 하는 작은 가슴이다.

 

말없이 공룡능선의 등허리 돌기 같은 뾰족한 봉우리를 밟아가는 동안에 좀 전에 다 빼앗겼던 빈 마음 그릇에 내가 살아오는 동안의 숱한 정념들이 발끝에서 사유되며 대자연에 비하면 티끌만 한 나라는 존재가 설악의 바람을 타고 나 또한 사유히는 자연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다시 마음 그릇을 채워 넣는 순간이었다. 나는 공룡능선에서 자욱한 구름바다 위로 봉긋이 솟아있는 산봉우리들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일출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설악산은 한꺼번에 모든 걸 다 보여주지 않는다는 듯 일출은 불그레한 구름으로 동쪽이라는 영역표시만 해 주었고 우선 수고했으니 공룡의 매인인 천화대만 보라 고했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나는 공룡능선의 가을은 어떤 얼굴일까 하고 벌써부터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다시 갈 수 있을까? 그리움은 늘 평행선의 철길 같지만 언제라고 마음을 정해두면 조금씩 다가가는 설렘이 있어 좋다. 그래서 가을 속에 어느 날을 정해둔다면 나는 또 그날을 위해 설렘으로 출렁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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