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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죽은시간.

고요하다. 어둠의 정적 때문이 아니라 창밖의 나무들이 그 잔가지 끝에서 미동의 떨림도 없이 매달려 있다는 것은 공기의 움직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대낮의 소음 속에서 나무만이 고요하고 그래서 땀줄기는 비너스 계곡을 이룬다. 세상이 먼저 깨어나고 그 밝음에 내가 깨어났을 때의 시작은 참 아름다움이었다. 맑고 투명한 빛이 창으로 넘어 들고 살랑살랑 바람결이 가을 맛까지 들더니 한낮이 되니 아침 찬 바람이 여름 열기를 밀어내기엔 아직 역부족인가 보다. 지구는 쉼 없이 돌아 가는데 복지부동하는 내 시간은 죽은 시간으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바늘 같은 솔잎도 흔들리지 못하는데 매미만이 짧은 생애를 열심히 울어대고 있네. 종류도 많은 매미들은 짧은 생명의 운명이 다하기 전에 어떤 결말이라도 맺어야 하고 유충이..

living note 2010.08.18

몽당연필

몽당연필, 어느 깊은 산골에서 온 청솔가지 하나가 이렇게 많은 새끼를 낳았다 제 몸에 흑심을 박고 새 생명을 얻은 청솔가지는 내 아이들의 필통 속에서 몽당연필로 두 번째 태어나고 깎이고 닳아서 이제는 영면에 들어 추억이란 이름으로 세 번 살고 있다. 나뭇결이 깎이고 흑심이 닳아 작아진 키만큼 내 아이들은 자라서 고학년이 되어 갔고 작아진 부피만큼 내 아이들의 지식은 큰 부피로 어린 머릿속으로 채워져 갔을 것이며 내 젊음도 조금씩 사위어 가겠지. 저녁마다 네댓 자루씩 연필을 깎아 가지런히 필통에 넣어주며 이쁘게 키워냈던 내 아이의 어린 시절도 나의 젊음과 함께 병 속에 고이 잠재워 두게 됨은 어느 날 샤프란 놈이 필통을 점령하고 나의 수고는 끝이 났다 사화 생활은 몽당연필에서 시작되고 더 큰 사회로 나아간..

living note 2010.08.13

다시쓰는 공룡능선

설악산 공룡능선을 다녀온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22킬로미터, 12시간 행보, 1275봉의 높이 이 험난했던 여정을 지친 몸으로 대충 써 두었던 산행기가 뭔가 빠진 듯해서 다시 쓰려는데 아직도 그날의 여정이 땀이 밴 채로 마음속에 뭔가 못다 한 말들이 남아있어 마음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여행길에 날을 잘 받는 것도 행운일 것 같지만 어쩌랴! 받아놓은 날을. 장마철에 비를 파하는 것 또한 지어놓은 복 통장이 없이는 귀하게 찾아 쓸 수는 없는 법, 비를 맞으며 체력을 아끼면서 산을 오르는 길은 즐거운 고행이었다. 고생하지 않고 공짜로 얻어지는 가치는 없다.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기쁨을 맛 보려는 것은 노력도 하지 않고 출세를 하려는거나 마찬가지인 욕심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그날의 고행은 행복의 ..

등산 2010.08.02

상림마을 사람들

산악회 이야기 뽕나무 숲이 연상되는 상림마을에는 검붉은 오디 향이 풍기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림마을에는 신생 타운이지만 옛날부터 이어져 온 정감 있는 마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는 원주민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원주민의 근본 심성이 신생마을의 온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제가 보고 느낀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이제 입주가 시작된 지 만 2년을 넘어서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에 마을을 대표하는 어떤 구성원이 되기 이전부터 마을의 화목을 위해 애쓰신 분들이 계셔서, 카페를 만들고 카페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 이주에 도움이 많이 되었으며 마을의 분위기를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14개 단지의 체계가 잡히고 주민대표도 생기고 ..

living note 2010.07.29

설악산 공룡능선

장마철에 떠난 우중산행 우리에게 비박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야영쯤으로 생각했더니 이번 경험에서 그 개념을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비박은 비를 맞으면서 고생스럽게 자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공룡을 알현하러 간다고 했으면 어땠을지, 감히 공룡을 잡으러 간다고 나섰으니 먹히지 않고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한다. 고문님의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포기하는 마음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밀어붙이는 특기는 우리 나리에 딱 한 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좋은 뜻의 밀어붙이기의 흔들림 없는 힘이 또 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도 있었다. 누군가가 중심이 되어 단체를 이끌지 않으면 언제나 일은 그르치게 되어 있는데 무모하게도 그냥 비가 오는 것도 아닌 적중률이 높은 장마철 호우주의보,그 우중에 걱정 반 행복 반으로 떠..

등산 2010.07.19

편리함의 양면성

세상은 점점 편리해져 가는데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쫓아가야 하는데 능력이 떨어지는 대열에 서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뭔가를 겨우 하나 터득하면 새로운 기능이 생겨버린다. 핸드폰의 문자를 익히고 인터넷을 배우고 겨우 편리한 세상에, 그 대열에 낀다 싶었는데 스마트 폰이란 게 나와서 또 숙제 거리가 생겨버린 것 같다. 편리함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 양면성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딘가에 문의전화라도 한 번 하려면 사람은 안 나오고 기게 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연세 든 어른들은 원하는 항목을 선택해야 되는데 뒤엣걸 들으면 앞엣건 잊어버려 힘들어서 속상하다고 한다. 마음이 급하고 다급한 일이 있으면 짜증이 나고 사람과 대화를 하고픈 생각이 간절해진다. 며칠 전에 너무 ..

living note 2010.07.05

장마빗 소리

장맛비 소리, 아내는 솥뚜껑 걸어놓고 지짐을 붙이고 바깥양반 대청마루에 누워 하염없는 빗소리 듣는 날/노부부의 양철지붕 때리는 소리는 내 집에 물드는 소리/ 부지런한 농부에게는 마른논에 물드는 소리/ 알뜰한 주부에게는 구석구석 곰팡이 피어나는 소리/부잣집 안방마님에게는 휘모리장단쯤으로 들리는 소리/시인에게는 시심에 물 오르는 소리/산천 초목에게는 갈증에 물 넘어가는 소리/ 뼈골이 드러난 계곡에게는 북적북적 모여드는 사람의 소리/ 파헤쳐진 강둑에게는 강바닥 메워지는 소리다. 가장 아프게 들리는 소리는 가난한 노부부의 방안에 물 들어차는 소리다. /가난도 서러운데 해마다 피해는 그들의 몫이네/ 휘모리장단에는 춤이나 추면 되지/ 온 국민이 이 같은 소리로 들리는 것은 산이 된 흙무덤이 본래로 돌아가는 근심스러..

living note 2010.07.02

떠나보면 별것도 아닌데

KTX 안에서, 무료하고 따분하다. 그래서 차 안에서 접이대를 펼치고 글을 쓴다. 일인 승객일 때는 옆자리에 같은 성(性)끼리 자리배정을 해주는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옆에 앉은 중년 남성의 체취가 아주 불편하고 움직임도 불편하다. 하는 수 없이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를 쓰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여행이라는 것은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끼리 해야 단조롭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혼자서 몇 시간을 차를 탄다는 것은 고역이다.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들도 특별한 것이 없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야산과 평범한 촌락 풍경. 뭘 그리 떠나고 싶었을까.막상 떠나보면 별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모처럼 신은 하이힐은 자꾸만 반쯤 벗어 발에 걸쳐지고. 어색한 정장은 불편하기만 하고 잠이라도 오면 좋을 텐..

living note 2010.06.13

매화와 매실 사이

대서문에서 노적봉까지,유월 초순 날씨가 31도를 넘는 것이 정상인지, 아직은 아닐 것 같은데 햇볕이 너무 따가웠지만 습도가 없어 산을 오르는데는 힘들지만 숲 속에 잠겨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지나다니고 그 바람에 꽃향기도 실려오고 맑고 푸른 하늘은 산 아래 뙤약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고 나와는 상관없는 날씨가 되어버린다. 아직은 호박꽃 정도는 된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은 작년 사월에 다른 곳 보다 유난히 일찍 꽃이 피었던 하얀 꽃밭이었던 장소가 어떤 이는 복사꽃이라 하고 우리는 벚꽃이라 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아 열매를 보면 알겠지 하고 있다가 드디어 다시 찾은 우리들의 꽃 찻집에는 예상을 깨고 그것이 매화꽃이었고 상상도 못 했던 매실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그 아래 떨어진 열매만 해도 술 한독..

등산 2010.06.09

일진이라는 것

국사당에서 숨은 벽으로,어제는 일진이 안 좋은 날이라고 해야겠다. 한 번 약속을 하면 날씨가  크게 나쁘지 않은 한 우리는 먼저 약속을 깨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위험하지 않을 정도면 대비를 잘하고 출발을 한다. 그렇게 지켜 온 우정이 20년 세월이다. 그동안 숫한 산행을 하면서 궂은 날씨를 많이 만나기도 한 것 같다. 비도 맞고 눈도 맞고 짙은 안갯속에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갯속을 한 발씩 내딛을 때는 마치 낭떠러지에 빠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제는 비 올 확률이 높지도 않았지만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걸 출발 직전에 알았지만 그냥 출발했던 것에서부터 좋지 않은 징조였을까, 중간에서 비를 만났는데 용하게도 지붕 같은 바위를 만나 거기서 점심과 차를 마시고 있으니 비가 멎은 것 같아서 다시..

등산 2010.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