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가는 길,
거대한 수채화 화폭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그런 거였다. 짙은 안개가 원경을 수묵담채화로 만들기도 했지만 조금씩 벗어나는 안갯속의 화폭은 명산의 화려한 단풍이 아니라 나지막한 야산에 여러 가지 색채가 조화를 이루며 갓 미술을 전공한 순수함의 작품 같기도 한 그 풍경 속 끝 지점에 아련히 남아있을 친정으로 내달리는 가족여행이 10월의 마지막 날을 추억의 한 페이지로 만들었다.
어머니가 떠나신 친정이 자꾸만 발길이 멀어지는 건 무조건 갔던 만만한 곳이 아니라 볼일이 생겨야 찾게 되는 거리가 되었지만 들어서면 아직도 엄마의 따스함이 그대로 느껴질 만큼 가을걷이를 보따리 보따리로 싸 주는 오빠 내외의 인정이 엄마의 손길을 그대로 아어가고 있어 아직도 내게는 변함없는 친정이다.
당일 돌아와야 하는 짧은 일정을 방에만 있을 수 없어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 풍경을 담으면서 어릴 때 지나던 그 길로 걸어가는데 그것이 좋은 건 오직 나의 생각인 지아이 들은 중간에 주저앉아 포근한 가을바람에 잠을 청해버린다. 하는 수 없이 집에 데려다 놓고 잠든 사이 다시 혼자서 과수원을 따라 걸어가는데 풍요로운 과일들이 보기만 해도 포만감을 느꼈다. 구석구석 시멘트길로 차가 들어갈 수 있고 옛날에 걷던 그런 오솔길이 아니었으며, 지금도 나그네가 이 산길을 걷는다면 담보 짐에 먹을거리는 없어도 되겠구나 싶었다. 시장에서 과일을 살 때면 한 개라도 더 가져오고 싶어 지는데 천지가 과일이니 가지가 꺾어져 함께 떨어진 사과 한 알을 못 본채 지나오며 사과 한 알의 가치를 잊어버리는 걸 보면 풍요로우면 탐내는 마음도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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