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에는 도심에 있을 필요가 없었던 내가 언젠가부터 차로만 지나던 한강을 걸어서 건너보고 싶다고 늘 생각만 하다가 추석을 맞아 집에 와 있는 딸하고 같이 걷기로 하고 종로 3가에서 만나 반포대교로 갔다. 반포대교는 오세훈 시장의 걸작으로 불릴만한 무지개분수가 화려한 불빛과 함께 멋진 음악 선률에 맞혀 물줄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래 잠수교를 천천히 걸으면서 음악도 듣고 사진도 찍고 작심한 야경 산책에 푹 빠져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양 옆으로는 다른 대교의 불빛과 도시의 불빛이 어우러져 있고 하늘에는 조금도 기울지 않은 한가위의 만월이 청아한 은파를 무지개분수만큼이나 내리고 있는데 서울을 홍보하기에 충분한 명소를 딸과 함께 걸어보는 여유로운 가을밤의 낭만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으리라. 무심코 갔는데 분수 가동시간이 밤 아홉 시부터 한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우리는 그 시간에 딱 맞추어서 간 셈이었다. 분수도 좋았지만 검은 물빛에 비친 야경의 오색 그림자와 떨어지는 물보라의 조화가 무척 아름다웠다.
그렇게 잠수교를 왕복하고 나니 어느덧 한 시간의 아름다운 분수의 향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제주도의 공기와 북한산의 공기에 젖어 있던 우리 모녀는 금방 탁한 공기에 목이 텁텁해 오고 약간 매슥해 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야경을 매일 본다면 특별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역시 살기에는 우리 동네가 최고야 하고 마을에 들어서는데 역시 상쾌하고 차가운 밤공기가 물로 목을 행거 내는 만큼이나 산뜻한 가운데 잔잔한 가로등이 안식을 주는 내 집으로 돌아오니 화려함은 잠시면 충분하고 사는 데는 공기 좋고 조용한 내 집이 최고라는 맘으로 편히 나를 눕힌다.
핸드폰으로 찍은 것에 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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