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이 빽빽한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리나라가 IMF 부채를 지고 살던 때에 콩나물시루 같던 출근길에 툭 튀어나온 등산배낭을 남의 앞에 들이밀고서 있을 때는 참 많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난 그래도 그런 모습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날마다 들려오는 소식은 실직과 생존투쟁 이야기뿐인 것 같은데 그래도 출퇴근하는 인파가 많다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는 10년을 주기로 어떤 고비 같은 게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는데 국가도 다르지 않은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는 걸 보면 지금이 한 고개를 넘어가는 깔닥고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상 2
파아란 하늘이 넓은 배경으로 드리워져 있고 맑고 향긋한 가을 공기는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이 가을 멋진 공연이나 봤으면 좋겠다"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친구가 장사익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해서 며칠을 신나게 기다리다 드디어, 가을밤 허기지고 고픈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주기에 충분한 그의 공연은 오랜 여운을 남기게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지하철, 빽빽한 지하철에 마음이 놓인다고 하던 그때처럼 복잡했지만 난 등산으로 단련된 몸이라 다리 아픈 일은 거의 없기에 편하게 서 있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일어 나자리를 양보해 주는 게 아닌가! 순간 망설여졌다. 호의를 무시할 수도 없고, 아니 벌써,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다니 고마운 게 아니라 오히 려심장에 큰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다음 역에서 내리는 게 아닌가! 그럼 그렇지. 내릴 때가 되어서 비켜 준 것이구나 생각했지만 옛날 생각이 그 순간에 스쳐갔다."나이가 많으면 차를 타도 젊은 사람 앞에 서 있지 말아야 되겠구나, 그건 비키라는 무언의 압박이 될 수 있겠어,하루 종일 공부하는 학생들이 더 힘든 세상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 남 앞에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폐가 되는 이를 어찌하나? 여기서 더 이상은 안 돼 젊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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