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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단풍

북한산 단풍길 혼자 집을 나설 때는 편한 길로 산책 삼아 다녀와야지 하고 달랑 떡 하나와 뜨거운 물만 챙겨 집을 나섰다. 혼자니까 아무것에도 구애받는 게 없으니까 가벼운 몸이지만 발걸음엔 무게를 실어 한 발 한 발 아주 천천히 걸었다. 중성문을 지나 노적사 입구로 들어섰는데 집을 나설 때 마음과는 달리 연기 없이 피어오르는 화톳불 같은 단풍길을 보고 나도 모르게 휩쓸려 가다 보니 코스가 점점 길어져 7시간을 걷는 성곽길을 따라 걷게 되었다. 노적사를 살짝 돌아 봉성암 입구로 접어들어 대피소에서 우회해서 대성문까지 갔다가 하산하는데 중간에 반석에 한 잎 떨어져 누운 단풍 같이 앉아서 차도 마시고 책도 보고 사진을 찍으면서 걷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것 같다. 여럿이 가면 지나치면서 함부로 카메라 셔터를..

등산 2011.10.23

설악산 주전골

이번 설악산 산행은 아쉬움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단풍을 볼 수 있고 단풍의 명소이니까 떠난다는 날만 받아 두어도 기다려지는 설렘이다. 그런 마음으로 떠났으니 산행 중에 있었던 다른 일들은 풍경 속에 묻기로 한다. 처음에 계획한 대로 다 갈 수 없었고 주전골만 왕복했으니 더 높은 봉우리의 화려한 단풍은 상상만 하고 온 샘이다. 너무 많은 단체이다 보니 출발에서부터 뜻대로 되지 않아서 시간이 지연되고 순수 등산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수의 뜻대로 설악산 맛만 보고 왔다. 그러나 이날 날씨만큼은 너무 청명했기 때문에 바라보는 설악산의 풍경은 마치 2.0의 때 묻지 않은 시력으로나 볼 수 있는 그런 깨끗하고 투명한 하늘과 단풍 이어 서멀 미를 하면서 굽이굽이 돌아쳤던 울렁거리던 오장육부가 정화되는 특효약..

등산 2011.10.20

수락산

오랜만에 수락산을 다녀왔다. 북한산 밑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수락산이 편해서 참 많이 갔었는데 이번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수락산은 거의가 마사토인데 비가 안 온 지 오래되다 보니 계곡엔 물이 없어 물고기가 헤엄을 못 치고 옹기종기 모여서 앞날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대책을 세우는지 가만히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여름 한꺼번에 비를 다 쏟아부었는지 물이 없으니 걷는 산길이 더 거칠어 보이고 먼지투성이라 재미가 덜하다. 무성하던 나뭇잎도 시들어 볼폼이 없지만 청단풍이나 더러는 곱게 가을 치장을 기다리며 싱싱하게 버티고 있는 듯했다. 그동안 긴긴 여름 뜨거운 뙤약볕을 견디어 내며 우리들에게 녹색물결로 눈을 즐겁게 해 주었으니 참 고마운 일이었지 인생의 황금나무는 초록빛이라..

등산 2011.09.26

북한산 14성문 종주

산성둘레에 있는 16개의 문 중에 대문이 달린 성문이 6개, 암문이 8개, 수문이 2개다. 이 중에서 수문 2개는 유실되고 터만 남았다. 수문, 대서문, 중성문, 중성문암문(시구문), 중성문수문터, 가사당암문, 부왕동암문, 청수동암문,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대동문, 용암문, 백운동암문(위문), 북문, 서암문(시구문) 일 년에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한 해를 허송세월 한 건 아닌 것 같다. 작년에 설악산 공룡능선을 다녀왔을 때가 그랬고, 이번에 북한산 14 성문 종주를 하고 나서 참 대단한 일을 해내었다는 자부심이 생기는 것이 또한 그러하다. 그동안 수없이 북한산을 오르내렸지만 하루에 성문을 다 돈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마을 ..

등산 2011.09.20

한가로운 추석

명절이 되면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날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 대 이동이 시작되는 날이니 오가는 길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데 그 즐거운 날쌔고로 인해 자식들이 다치는 걸 보면 자식을 기다리던 그 마음이 얼마나 쓰라리고 오기를 바랐던 마음에 후회가 될까 하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되었는데 내 큰딸도 결혼을 하고 나니 그 대열에 끼어 있어 이제는 남의 일만은 아닌데 시댁 고향에서 무사히 돌아왔다는 전갈을 받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어제는 한가하게 추석을 보내고 있는데 티브이에서 종가에 대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우리 모녀는 정신문화가 잘 계승되어야만 해 그렇게 말하고 서로 같은 마음으로 방송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진성이 씨 종택도 나오고 종가 소개도 나오는 걸 보고 있다가 아이한테"이참에 ..

추억의 공간 2011.09.13

가을 아침의 묘사

하늘에서 가을이 내리는 아침이다. 언제나 잠이 고픈 나에게 간밤엔 끊김 없이 곤히 자고 나서 인지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어느새 아침햇살이 가득 들어앉아 그 투명한 빛으로 나를 감싸 안는다. 늦잠을 자도 딱히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닌 나의 일상이 이렇게 온몸 가득히 햇빛을 몸에 두르고 시작하는데 간단한 샐러드 한 접시의 아침도 빛이 있는 식탁에서 첼로의 선률을 들으면서 맛있게 먹고 약간의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집 앞 뒤로 쭉~ 늘어서 있는 소나무들이 품어내는 향으로 후식을 먹는다.연일 따끈따끈한 햇빛을 받아먹어서인지 나무들도 한 뼘이 나가지들을 위로 밀어 올려 잎들이 눈높이보다 위에서 나풀거린다. 물기 없는 가을바람이 살갗에 스미면 뜨겁던 여름 열고만 있던 땀구멍들을 이제는 닫아 두어도 된다는 듯 소슬한 ..

living note 2011.09.06

정기산행 북한산 의상능선

기다리지 않고 오는 계절은 없다. 기다린다고 더 빨리 오는 계절도 없다. 계절이 바뀐다는 건 그만큼의 세월도 흘러야 되고 자꾸 소중하게만 생각되는 시간들이 너무 아깝고 잃는 것도 있지만 내 얼굴에 주름 하나 더 붙어도 용납될 만큼 봄가을은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황혼의 불꽃같은 단풍이 그렇게 빨리 사그라지는데도 말이다. 사람이 살아 가는데 의식주만큼이나 영향을 미치는 것이 계절과 그 속에 포함된 날씨인 것 같다. 절기 속에는 어느덧 가을인데, 오고 가는 것에 경계를 두지 않는 자연과 계절의 교차점에서는 `초`라는 글자를 하나 더 붙여서 초봄, 초여름, 초가을이라고 구분을 하기도 한다. 어제는 정기산행이 있는 날인데 하늘만 가을색이지 날씨는 한여름이고 그렇게 많던 물든 어디로 흘러가고 가난한 계곡에 물이 놀..

등산 2011.08.29

한 발 차이가 삼천포로.......

힘 빠진 매미소리도 느려지고 아침저녁은 어느새 서늘함마저 드는데 내일이 처서라니 여름도 다 간 것 같다. 밉다 밉다 해도 헤어질 땐 서운한 게인 지상 정인데 계절도 그와 같다. 비 피해는 많았지만 더위는 작년만큼 심하지 않았는데 막바지라 생각하니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올여름엔 비 오는 날이 많아서 등산을 갈 수 없어 근육들이 너무 느슨해진 게아닐까 싶어 산에는 가고 싶지만 혼자는 선뜻 나서지 질 않아서 딸한테"엄마가 산에 가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 우리 같이 갈까?" 했더니 "응, 엄마 좋아"라고 한다. 가끔이지만 산에 가는 걸 싫어하진 않는 것 같은데 문제는 엄마를 못 믿겠단다. 저번에도 위험한데는 가지 말자고 하길래 알았어 북한산엔 의상능선만 피하면 문제없어, 그렇게 말해 놓고는 어디서..

등산 2011.08.22

마음의 거리

내꽃밭 도라지 반야화 다가가는 거리는 즐거움에 지척이고 돌아서는 거리는 단장의 천만리라 마음의 거리는 찰나인데 어느세 거기인데 몸으로 가는 길은 왜 이리도 멀기만한지! 마음을 열면 우주를 담을 수 있지만 마음을 닫으면 바늘 조차도 꽂지 못하네 가야할 곳, 열린 마음인 줄 알면서도 내가 닫혔으니 아득히 멀기만한가? 멀어진 마음의 거리는 측량키도 어려워라 침묵하는 마음의 깊이는 내려가도 내려가도 닿을 길 없네. 가늠키 어려운 마음의 거리도 용서 하나로 열고 나면 거리도 깊이도 눈에 다 보이는 걸 그보다 더 가깝고 그보다 더 넓은 건 없다. 열고 살아라 나머지는 다 열고 살아라.

living note 2011.08.09

계곡을 돌려달라

마을 정기산행이 있는 날, 올여름은 유난히 폭우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이라 집 나서는 날 잡기가 겁이 난다. 그렇다고 나서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은 폭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하루살이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시간이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하루 동안 역사를 다 이루고 죽는데 나는 이만큼 살면서 무엇을 이루었는지 쌓여있는 게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나에게도 이제 시간이 가장 귀한 것이라는 인식이 새롭게 마음에 그늘을 만든다. 그래서 폭염 속에서도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고 온 하루였다. 여름에 산행을 하다 보면, 몸에 수분이 다 빠지는 것처럼 땀을 흘리고 나서 하산하다 만나는 계곡에 발 한 번 담그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는 산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장마 끝이라 물속에 뒤섞여 있던 ..

등산 201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