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단풍길
혼자 집을 나설 때는 편한 길로 산책 삼아 다녀와야지 하고 달랑 떡 하나와 뜨거운 물만 챙겨 집을 나섰다. 혼자니까 아무것에도 구애받는 게 없으니까 가벼운 몸이지만 발걸음엔 무게를 실어 한 발 한 발 아주 천천히 걸었다. 중성문을 지나 노적사 입구로 들어섰는데 집을 나설 때 마음과는 달리 연기 없이 피어오르는 화톳불 같은 단풍길을 보고 나도 모르게 휩쓸려 가다 보니 코스가 점점 길어져 7시간을 걷는 성곽길을 따라 걷게 되었다. 노적사를 살짝 돌아 봉성암 입구로 접어들어 대피소에서 우회해서 대성문까지 갔다가 하산하는데 중간에 반석에 한 잎 떨어져 누운 단풍 같이 앉아서 차도 마시고 책도 보고 사진을 찍으면서 걷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것 같다. 여럿이 가면 지나치면서 함부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지만 혼자서 빛을 최대한 살려 정 성스럽게 투명한 사진을 찍으니까 여백도 없이 단풍으로 메워진 풍경이 너무 예뻤지만 누구와 기쁨을 나누지 못해 속으로 채워진 감탄사가 출렁되어 외롭기까지 했다.
소나무는 가을이 되니 작은 풀포기까지 물들어 가는데 소나무야 너는 어쩌자고 그렇듯 시퍼렇게 버티고 있느냐? 살다 보니 변해야 할 때가 되면 변할줄도 알아야 되더라. 모두가 물들어 가는데 혼자서만 청청한들 누가 알 주기나 하느냐,차라리 절개를 꺾고 가을 한 철만이라도아름답게 물들어 가지 않으련? 너의 절개가 오늘은 왠지 너무 들추어져 부끄럽게 보이는구나.나도 단풍, 너도 단풍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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