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진 매미소리도 느려지고 아침저녁은 어느새 서늘함마저 드는데 내일이 처서라니 여름도 다 간 것 같다. 밉다 밉다 해도 헤어질 땐 서운한 게인 지상 정인데 계절도 그와 같다. 비 피해는 많았지만 더위는 작년만큼 심하지 않았는데 막바지라 생각하니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올여름엔 비 오는 날이 많아서 등산을 갈 수 없어 근육들이 너무 느슨해진 게아닐까 싶어 산에는 가고 싶지만 혼자는 선뜻 나서지 질 않아서 딸한테"엄마가 산에 가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 우리 같이 갈까?" 했더니 "응, 엄마 좋아"라고 한다. 가끔이지만 산에 가는 걸 싫어하진 않는 것 같은데 문제는 엄마를 못 믿겠단다.
저번에도 위험한데는 가지 말자고 하길래 알았어 북한산엔 의상능선만 피하면 문제없어, 그렇게 말해 놓고는 어디서 잘 못 되었는지 하필이면 의상능선으로 가게 되어서 하산길에 쩔쩔매는 딸을 보고어 찌나 미안하고 엄마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대남문 방향으로 가다가 계곡을 건너 부왕사지 쪽에서 편하게 오르다가 사모바위를 보고 삼천사로 내려오자 했는데 한발 차이로 또 의상능선을 타게 되었다. 할 말이 없는데 내 딸이 한 마디 한다." 엄마는 목적지를 제대로 간 적이 한 번도 없어" "이제는 엄마 말을 안 믿을래"라고 한다.
등산 경력이 얼마인데 아직도 이러니 아마도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래도 집을 나설 때는 잠도 덜 깨었는 걸 데리고 나섰는데 산에 가면 몸이 가벼워진다는 걸 터득한 걸 보면 유일한 나의 제자가 조금 있으면 청출어람이 될 것도 같다. 무엇보다 숲 속에서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모녀 가책을 읽는 시간이 참 즐거웠던 행복한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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