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88

나와 바람과 산책

언제나 그렇듯 나의 하루는 산책으로 시작한다. 집 밖을 나서면 아파트 사이에 녹지공간을 살려서 산책코스를 남겨 둔 도시설계가 맘에 들고 또한 바로 야산으로 이어지도록 좁다란 산책로를 남겨놓은 것에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겨울이면 새벽 같은 시간, 6시가 되면 집을 나서는데 처음엔 신선하고 서늘한 공기가 너무 좋구나 하고 한참을 오르다 보면 점점 몸 속의 피가 데워지고 정상에 도달하면 급기야 피는 끊어서 김이 몸밖으로 배출되면 금방 수증기로 변해 방울방울 맺히는 그것이 땀인 것 같다. 산책을 할 때는 발의 감각을 최대한 이용해서 한 걸음 한 걸음에 한 생각 한 생각을 실어서 걷다 보면 잡념은 사라지고 대신 평소에는 생각 못 했던 깊은 사고와 사물을 관찰하게 된다. 새들이 우는 소리를 듣다 보면 한 마리가 ..

living note 2013.07.07

2013년의 슈퍼문

일 년 중 달이 가장 크게 보인다는 슈퍼문, 보잘것없는 카메라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기회를 놓칠세라 저녁에 달맞이 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는데 오늘따라 아파트 높이가 왜 그렇게 다 마천루 같은지, 적당한 장소에는 공중에 떠있는 집들이 너무 높아 달이 가려지고 겨우 우리 마을 산책로가 멋진 언덕으로 올라가 구름 속으로 들랑날랑 하는 달을 기다림 끝에 겨우 찍었더니 맘에 드는 게 없다. 떨림이 심해서 쉽지가 않다. 그래도 겨우 한 장 얻은 것에 계수나무와 토끼도 보이니 너무 기쁘다. 그리고도 뭔가 부족해서 집안에서 한 장 더 찍었지만 역시 붉게 떠오르는 순간이 가장 좋다.

living note 2013.06.23

2013년 어버이날을 맞아

5월, 어딜 가도 다 좋은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참 많은 기념일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많던 행사들이 줄어들고 대접을 받는 일만 있다는 것도 그리 좋지많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은 해마다 어버이날이 되면 큰딸이 친정엄마와 시어른들과 함께 시간 보내길 좋아한다. 아무도 불편해하는 사이가 아니기 떄문에 가능한 일이다. 요즘 큰애들이 너무 일이 많고 연일 힘들다보니 당일에 오대산 월정사로 가서 산채정식을 먹고 전나무 숲길을 걷고 내친김에 강릉에서 해변까지 걷고나서 돌아오다가 맛있는 저녁까지 먹고 들어오니 늦은 밤이 되었다. 이날을 위하여 큰애 내외가 시간은 많지 않고 어디로 갈까? 무엇을 먹을까? 많이 생각한 것 같다. 자식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난 부모님꼐 효도를 마..

living note 2013.05.05

용인숲길

요즘은 산행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덥지 않아서, 바람이 있어서, 아직은 진달래와 산벚꽃이 있어서 좋고 점점 유채색으로 변해가고 푸른 물감이 번져가는 듯해서 산의 원경이 참 이쁘다. 매일 오르는 길인데 며칠 전에 보니까 새로운 이정표가 생겨서 어디일까 궁금하던 차에 오늘은 어디가 되든 한 번 가보자며 노란 리본을 따라갔더니 가도 가도 목표로 삼았던 할미산성이 나오지 않고 물어볼 사람도 만날 수 없고 그렇게 몇 시간째 걷다가 드디어 혼자 가는 여자를 만나서 이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용인시에서 석성산~할미산성~법화산 구간의 단절된 숲길을 연결하는 ‘용인 숲길’ 조성을 완료했다는 곳, 할미산 정상에 산성의 부서진 잔해가 보이고 현재 산성을 복원하는 중이었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

living note 2013.04.27

나의 산책코스

내 일상 중에서 가장 단맛이 진하게 나는 시간이다. 길은 하나지만 비라도 오는 날은 비슷하면서도 묘한 걷는 맛이 틀리는 길이다. 봄이 느린 걸음으로 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남녘에서 만났던 봄이 내 집까지 도달하는 동안 지날 때마다 그릇그릇에 소담하게 꽃을 담아두고 떠나가는 곱고도 더딘 그 걸음을 이제는 그만 멈추라 하고 싶다. 그래도 떠난다면 내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으랴만 약속이나 하고 가시라. 봄이 꽃을 몰고 올 때 나 또한 꽃다움에 있어달라고, 마음만이라도. 진달래는 떨어져 눕고 푸석푸석한 땅에 봄비가 내리는 날은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어린잎들이 힘껏 젖을 빨아올 리 듯 입술에 방울방울 맑은 젖을 흘리고 있네. 이렇듯 너무도 사랑스러운 어린잎이 쑥쑥 커가는 아침, 풋풋한 솔향 가득한 산..

living note 2013.04.25

애상

구구 소환도 구구 소환도의 마지막 매화가 피는 날 봄의 입김이 무엇이길래 언 땅 시름에 생명이 솟구치는지 나무의 모성은 무엇이길래 혹한에도 꽃을 품고 있었는지 나목의 우듬지에 봄이 올라오면 줄기마다 가지마다 빗장이 열리고 철없는 꽃잎 입술을 내미네 봄이 왔는데 매화도 왔는데 나의 바다는 잔잔하다가 파도가 일다가 해일같은 그리움이 덮쳐오면 봄은 겨울 되고 매화도 낙화되어 그 꽃잎 잔잔히 떠돌다가 파도를 타다가 해일에 쓸려 먼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그리움을 삭혔지만 먼먼 곳으로 떠돌던 꽃잎 붉은 멍으로 파도에 밀려 내게로 다시 오네.

living note 2013.03.13

월영교

월영교, 그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야경이 연상되는 다리다. 안동댐 들머리에서 바라보면 긴 곡선으로 중앙에 날아갈 듯 월영정이 있고 그 아래로 깊고 넓은 바닷빛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안동댐 보조댐이다. 이른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올라 월영정을 감돌며 몽환적인 풍경이 되고 달밤이면 선명한 달그림자가 비쳐서 잔잔하게 출렁이며 시 한 수 절로 토해질 것 같은 애잔함마저 들게 하는 운치를 간직한 다리다. 월영정까지는 직선으로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 뒤로도 시작점만큼이나 더 굽이치며 이어져 있었다. 서울에서 한강을 도보로 걷고싶다는 생각으로 어느 날 잠수교를 걸었지만 이만큼 멋스럽지는 못했던 것 같다. 월영교도 반포대교같은 분수도 있고 조명도 있다, 사람만 다니는 다리가 어디 흔한가? 다리 건너에는 ..

living note 2013.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