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 하나만 간밤에 단비가 지나간 자리 아무렇게나 파인 웅덩이에 하늘이 놀고 구름이 놀고 바람은 하늘을 흔들며 논다 작은 것에 큰 것이 잠긴 화엄의 세계가 길 위에 있었네 하늘이 내 눈 아래도 있네 발을 담그어 승천해 선녀나 되어볼까 그러나 발을 담그면 하늘은 깨어지고 검은 웅덩이 하나 남아 화엄은 그만 사바의 꿈이 되고 말아고말아 내 가슴에 웅덩이 하나 만들어 하늘을 담아내고 구름을 담아내고 가장자리엔 바람이 물어온 씨앗을 심자 숲이 되고 꽃이 피고 비라도 오면 맑은 샘 되게 하여 새들 목 축이고 나그네도 쉬어가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허허로이 두지 말고 이만큼 살았으면 가슴 한켠 작은 웅덩이 하나 만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얼마나 넉넉한가 가진 것 다 내어주고 잔잔한 수면 하나만 두자.